결혼할 생각 없는 놈의 결혼 얘기
결혼을 한다는 거나 가족을 만든다는 게 새로운 공동체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관념이고, 당연히 계속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정하고, 때로는 나에게 불리하게 되더라도 맞춰가면서 산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없이 결혼하는 경우가 꽤나 많은 것 같다. 결혼해야하니까 결혼한다는 식의. 독립해서 살려면 1인가정으로는 많이 힘든 것도 진실이고. 법적 보호장치가 많이 부족하긴 하니 생존전략이라면 생존 전략이지만.
근데 이제 그런 식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이제 퐁퐁남 소리에 넙쭉 넘어가는 것 같다. 협상이란 개념이 없거나 적어도 그 맞춰가는 기준이 상대한테 너무 높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 퐁퐁남 소리 흘러가는 거 보면, 결국 가부장제가 붕괴했기 때문에 나도 가부장의 책무를 다할 수 없으며 이 공동체의 질서를 재조정해야한다는 식의 언설임. 그게 뭐 생활비 관리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결국 경제적인 이야기. “사랑”은 그냥 그걸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건 “남녀가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서 1:1 관계를 맺고 그것이 정상규범의 핵가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인 로맨스 관계를 의미한다. 이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자신의 요구가 지극히 경제적인데, 자신의 요구는 “사랑”이 있다면 철회할 수 있다(=”사랑”만 해주면 “ATM이어도” 괜찮다)는 식의 ‘접착제’로 사용한다는 뜻.
그런 관념을 지닌 사람들이 “투정”을 부리는데, 정작 그 과정에서 상대 협상자인 여자들 목소리는 지워지거나 그 이상으로 혐오 당한다고 생각함. ‘엄마’들이 어떻게 이야기 되는지 보면 답이 나오지 뭐.
좀 다른 소리지만, “피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억울하다는 정념과 함께 나의 요구는 매우 정당하다 / 나의 말을 무시해선 안된다”는 식의 언설이 그냥 한반도 전반을 뒤덮은 것 같음. 정체정 정치 속에서 자신을 피해자화하는 식의… 그리고 그 언설 중에 특정층의 말을 미디어가 픽업해서 선전해주고.
여하간 나는 그래서 1인가구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시민결합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봄. 지금까지의 혼인을 통한 가족 형성, 혹은 혈연에 의한 가족이라는 관념 자체를 벗어나서 좀 더 유연한 생활/경제 공동체가 제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함. 결합 해지도 훨씬 더 간편해져야 하고. 물론 인간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파트너 십에서, 경제적인 계약만으로 긴 관계를 이어나갈 순 없을 것임. 굳이 “사랑”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공동체를 지속시켜줄 수 있는 넓은 기반, 어떤 연대(bond)가 되는 사랑과 달리 아주 특수한 형태의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다만 어떤 분이 시민결합, 특히 그것이 해지하기 쉬운 부분에서 오히려 ‘개인의 모듈화’를 발생시키고, 그것이 정체성 정치의 분리주의화를 가속화하는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뭐 나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아가 법-국가가 그 ‘모듈’들의 ‘플랫폼’이 되어 갈등이나 균열을 회수되는 것도 지적해줬는데 맞다고 생각하고…
뭐, 나도 지금의 정체성 정치가 소우주화, 분리주의화로 향하고 있고(남초의 결집 또한 결국 이런 회로 안에서 반동임), 그렇기 때문에 계급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노동과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더 넓은 연대를 조직하는 방식의 구좌파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개인들의 ‘모듈화’가 다분히 진행되었는데 이제 와서 ‘보편성’을 다시 되찾자는 사고 방식이 정말 먹히겠느냐 하면 나도 자신있게 말하긴 어려움. 다들 시니컬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