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으며, 그렇게 길러져 왔다’
오시이 마모루/ 후지와라 카무이의 『견랑전설』에서 발췌
平時に於ける警察官の力の行使は
평소에 있어서의 경찰관의 무력 행사는,
たとえ人命の殺傷に至ったとしてもそれは〈正当防衛〉であり
설령 인명을 살상하게 된다고해도 그것은 ‘정당방위’이며
〈制止〉という行為の結果に過ぎず
‘제지’라는 행위의 결과로 치부된다.
それが法の正義ぼ下に執行されている限りにおいて
그것이 법의 정의 아래에서 집행되는 한,
個々の警官が倫理的に裁かれる事はあり得ない
각각의 경찰관이 윤리적으로 재판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一方国家の命令下に敵対行動中の兵士は通常とは逆の道徳律の下に置かれ
한편 국가 명령하에 적과 싸우는 병사는 평소와는 다른 도덕률에 놓이게 되며,
その力の行使による殺傷・破壊等の行為は
그 힘의 행사에 의한 살상・파괴 등의 행위는
それ自体が倫理的にもむしろ善として称揚される
그 자체가 오히려 선으로서 칭송받는다.
だからこそ機を見て異なる道徳律を要求される者は
그렇기때문에 평소와 다른 도덕률에 놓이게 된 자는
それ故にその力の行使にあたって慎重を期さなければならない
그 힘의 행사를 행할 때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だが警察官でありながら絶えず騒乱の現場にあって
그러나 경찰관이면서 끊임없이 어지러운 현장에 출동해,
兵士の如く振舞う特機隊
군대 병사처럼 행동하는 특기대,
いわば 平時にあって有事を生きる貴方達には判っている筈だ
평시에도 유사시처럼 살아가는 너희들은 잘 알 것이다.
平時の警官・有事の軍…
평시의 경찰, 유사시의 군인….
その言葉それ自体が実は平時に語られるべき言葉に過ぎず
실은 그 말 자체가 평상시에도 흔히 쓰이는 말이며,
その本質において優れた兵士である事を要求されている者にあっては
본질적으로 우수한 병사를 요구하는 시점에서는 평상시를 항상
有事こそが唯一の平時そのものに他ならない
유사시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다름 없다.
では〈有事〉をその存在の中心的課題として創設されながら未だ〈有事〉なるものの具体性を掲示されず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부는 아직까지 ‘유사시’의 구체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ただ兵としての錬度の向上のみを要求されてきた我々は
우리들에게 단지 병사로서의 숙련도만을 요구해오고 있다.
一体どのような時を生きるべきなのか?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만 하는가?
ただ為政者の都合のみによって産み落とされ
그저 위정자의 편의를 위해 편성되어,
その正統を認知される事なく力のみを蓄えて育った鬼子…
그 가치를 인정받기는 커녕 오히려 힘만을 비축해 온 악마의 자식들…
…しかしそれでもなお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組織された暴力は〉決して自ら意志をもってはならない
조직화된 폭력은 결코 자신의 의사를 가져서는 안된다.
この国のささやかな歴史はそう教えているし
이 조그마한 나라의 역사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며
少なくとも戦後に生を受けた我々はそう躾られてきた
적어도 전후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렇게 배워왔다.
その事自体を疑う事はできるにせよ
그 자체에 의문을 품을 수는 있어도,
しかし最後に我々の行動を決定するのは結局のところ体内を流れる〈血〉に他ならない
최후에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체내에 흐르는 ‘피’일 게 틀림없다.
(ある種の獣がそうであるように)我々にとって決断とは考える事ではなく
(어떤 종류의 짐슴들처럼) 우리들은 생각해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体に繰り返し教え込まれてきたそれだけでありその過程を否定する事は我々自身の存在を否定するに等しい…
교육받아 몸에 익혀진대로 판단하며, 그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では誰が我々の意志となるべきなのか?
그렇다면 누가 우리들의 의사를 대변하줄 것인가?
国家・人民・イデオロギー…
국가, 국민, 이데올로기…
だが〈正義〉が常に誰かの正義であり
그러나 ‘정의’라는 것이 항상 특정인의 정의이고
その執行によって常に血が流されるものなら
그 집행이 항상 피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我々が求める〈主人〉もまたそんな抽象的なものである訳がないし、あってはならない
우리들이 바라는 ‘주인’도 그런 추상적인 것일 리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
求めて得られるものなら 求めもしますが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추구해도 좋지만,
出会うことでしか得られぬもの
만나는 것 말고는 얻는 것이 없다.
出会ったその時に〈血〉が それと教えてくれるものこそ我々のもとめるものなら
만난 그 순간, ‘피’가 그것이라고 일깨워주는 것이바로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待つだけです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待つ事には慣れましたし
우리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なにより、そう躾られてきたんですから…
또 그렇게 교육받아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