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녀의 감정』 시즌 3까지 감상
장안에 화제였던 2차창작 에세이 만화. 시즌 2의 EP2~4인 <돌아온 동인녀의 감정(出戻り同人女の感情)>빼고는 다 그저 그렇다.
감상 끝… 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끓는 점이 매우 낮게 설정되어 있지만, 이 등장인물들을 애태우는 아야시로는 그런 사고 회로에 접속되어 있지 않다는 구도로 이뤄진 단편집이다. 그 와중에 역시 그런 사고 회로와 관계 없어보이고 등장인물들이 보기엔 별 볼일 없는 실력인 나카지마가, 그토록 그들이 원하는 아야시로의 옆 자리를 꿰고 앉았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팽창해버린 감정이 뻥 하고 터져버린다, 뭐 이걸로 승부를 보는 원패턴 만화다(단호).
나는 아야시로가 이런 사고 회로에 접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만화를 굉장히 데포르메된, 일종의 러브 코미디나 궁중암투물 만화로 읽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장르>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그 <장르> 2차창작에서 필요한 테크닉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로 소설 위주란 점도 그렇지만, XX 소재라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그에 동반하는 조사 과정이나 고민은 생략되어 있다. 물론 동인 소설이란 게 커플링을 중심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그 커플링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이런저런 소재들을 조사하고 고증하려드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이런 창작적인 테크닉에 대해서는 800자 수련이라는 무슨 감사의 100회 정권지르기 같은 얘기만 나올 뿐이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떤 수법을 이용할 것인가, 몇 자 안에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하는 얘기는 스킵하고 있다. 암시적으로 ‘모두 다 알고 있지?’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은 창작을 테마로 한 작품이 아니다.
둘째, 그런 얘기보다는 동인 시장의 생태를 그리고 있는데 집중하고 있다, 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거기서 중심이 되는 <존잘님>인 아야시로가 정작 그 사고회로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즉, 실제 동인 시장에서는 그 <존잘님>과의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반면 이런 부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단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제거한, 비유하자면 마찰을 제거한 진공 공간 안에서야, 비로소 아야시로는 발버둥치고 희열을 느끼는 <인간>이 아니라, 도도히 모든 것을 움직이는 순진무구하면서도 잔혹한 <신>으로 군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야시로와 익명의 독자들 — 북마크의 숫자나 조회수, 혹은 스쳐지나가는 애독자 즉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없는 캐릭터들’로 손쉽게 치환될 수 있다. 그런 우연한 <신>의 사랑을 받기 위해 = 간택받기 위해 히로인들이 종횡무진하고 착각하고 갈구하는 장르… 러브 코미디 아닌가?
내가 아야시로가 전혀 등장하지 않은 <돌아온 동인녀의 감정>을 최고의 에피소드로 뽑은 이유도, 실은 이 에피소드가 가장 이색적인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창작이란 취미활동과 생활을 양립하기 위해 싸우는 여성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신>에게 간택받으려고 애쓰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즌 2에서 이런 식의 스타일이 좀 더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에피소드를 최고로 뽑은 이유는 창작을 주인공의 생애 배경이 꽤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나세 같은 경우 그야말로 ‘인도쿄 중산층 대학생’이란 것 외에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다. 시즌 2의 9~10화에서는 일단 지방에서 살고 있는 동인녀 얘기가 나오는데… 솔직히 말해서 연령차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아는 지방에 사는 오타쿠들, 혹은 지방에 사는 동인창작자들이 <도쿄>에 갖는 애증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당연히 오로지 <신>을 향한 신앙과 투쟁, 간증 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 고 평하고 있는데 트위터 사람들 반응은 다르더라고! 아니 나도 오시이 마모루를 <신>으로 모시고 있지만 오시이 마모루가 미야자키 하야오나 토미노 요시유키랑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아아 영감님 또 이상한 친구 만드시네” 정도의 감상밖에 들지 않아! 물론 이건 내가 동인 창작을 하면서도 ‘동인 시장’ 안에서 지위를 얻고자 하지 않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든 감상이기도 하겠지. 암튼 뭐 그런 러브코미디로 보면 나같은 사람도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이긴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