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에 대한 짧은 조사문

Ashihara NepuYona
5 min readMay 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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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란 SF, 그 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의 하위 장르를 일컫는다. 이 용어는 브라이언 알디스에 의해 1973년에 소개되었는데, 그의 정의를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번역 필자).

그 작품들의 플롯은 치밀하면서도 황당무계하며, 또 그것들의 주민들은 짧은 이름과 짧은 생명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을 가능하도록 손쉽게 바꿔놓는다. 이들은 바로크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따르는데, 즉 세련되었다기보단 대담하고 생기넘치며, 엑센트릭하다. 때론 그렇기에 절도를 잃고 지나치게 호화로워지기도 한다. 그 작품들은 와이드 스크린을 즐기며, 우주나 시간여행을 주로 설정으로 차용하고, 적어도 태양계 전체를 배경으로 하곤 한다.

브라이언 알디스가 이런 용어를 만들어낸 맥락에는, 스페이스 오페라에 대한 평가가 ‘닳고 닳은 지겨운 소재’로 전락한 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다. 그는 <파괴된 사나이>나 <타이거! 타이거!>와 같은 작품도 스페이스 오페라에 포함되며, 이러한 새로운 스페이스 오페라 = 뉴웨이브 스페이스 오페라를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라고 명명한 것이다. 다만, 스페이스 오페라란 말이 이미 널리 보급되고 또 멸칭으로서 의미도 약화된 영어권에서 이 용어는 금방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헌데, 일본에서는 이 말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 확산되었다. SF작가 쿠사노 겐겐의 분석을 간략히 정리하면, 브라이언의 비평집이 일본에 소개되었을 당시에 이 용어를 “아이디어의 격류에 의한 아찔함(アイデアの奔流によるめまい)”로 재해석한 다른 비평가의 책도 출간되면서 일본에선 이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이른바 과학적인 치밀함이나 고증을 중심으로 두는 하드SF의 대립축으로서, 황당무계한 상상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SF작품들을 이르게 된다.

이것은 내 상상이지만, 뭣보다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에 대한 일본어 번역이 ‘너무 멋있게’ 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브라이언 알디스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에 대해 다른 소설의 서문에서 언급한 문장의 원문 및 한국어 직역은 아래와 같다.

It plays high, wide, and handsome with space and time, buzzes around the solar system like a demented hornet, is witty, profound, and trivial all in one breath // 시공간을 넓고 높이 또 멋지게 사용하며, 태양계를 화난 말벌처럼 떠돌며, 위트있고 심원하면서도, 그것들이 단숨에 이뤄진다.

반면, 일본 위키에 있는 문장은 이렇다.

時間と空間を手玉に取り、気の狂ったスズメバチのようにブンブン飛びまわる。機知に富み、深遠であると同時に軽薄 // 시간과 공간을 한 손에 쥐고, 미쳐날뛰는 말벌처럼 붕붕 날아다닌다. 기지 넘치고, 심원하며 동시에 경박하다.

뜻은 같지만 ‘너무나 멋있기’ 때문에 역시 모두들 쓰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근거없는 추측을 덧붙여본다.

어찌되었든, 80년대나 그 이후 일본SF에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흐름이 있을지언정, 실제로 이 말을 현재 부활시킨 것은 『천원돌파 그렌라간』, 『킬라킬』 등의 각본가 나카지마 카즈키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이나 『킬라킬』이 장르로서는 그에 속하지 않더라도, 작법론적으로는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화용론적으로 보자면, “아무튼 우리는 우주로 간다!!”는 트리거 애니메이션의 작풍이 그대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불명확하지만 직관적인 의미에 더해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가 갖는 여러 지류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시점을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핵심을 ‘와이드 스크린’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와이드 스크린’은 분명히 영화를 염두에 둔 단어이며, 브라이언 알디스가 스케일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영화 중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스펙터클한 것들을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영화는 4D체험이니 아이맥스니 돌비 시네마니 여러 기술들로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볼거리의 역사는 거의 100년을 거슬러 오른다. 이를 테면 1900년에 등장한 두 영화, “잭이 지은 집”“마차에 치이는 기분”은 역재생이나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영어권의 ‘wide-screen baroque’에서 시공간을 여행하거나 태양계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와이드 스크린 즉 영화의 스펙터클함이 갖는 예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고. 또한, 일본어권의 「ワイドスクリーンバロック」에서 나타나는 (황당무계한) 아이디어의 격류 역시, 이러한 스펙터클함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이렇게 볼 경우에, 우리는 두 가지 지류로 갈라져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던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란 개념을 간단히 통합할 수 있다. 단,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어디까지나 SF에 속하며 적어도 스페이스 오페라와 근친관계에 있음을 그 한계선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조사를 정리해보면 ‘스페이스 오페라와 근친성을 지니며, 장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함을 과시하는, 황당무계한 아이디어 중심의 사변소설’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의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정의에서 거슬러 올라 이 장르에 적합한 작품들의 예시를 들자면, TV애니메이션으로는 언급한『그렌라간』이나 『킬라킬』, 『배틀 애슬리테스 대운동회』 정도를 들 수 있겠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는 『시도니아의 기사』나 『극장판 소녀☆가극 스타라이트』로, 실사 영화로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들 수 있다. 게임에서는 『베요네타』 시리즈의 첫 작품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이 스스로의 장르를 ‘∞(논스톱) 클라이맥스 액션’이라고 지칭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논스톱 클라이맥스 액션’이라는 의미는 명확하지 못해도 직관적인 단어와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는 거의 같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내가 기고한 다른 글을 참조할 것. 애초에 이 글이 링크한 기고문쪽을 기반으로 하되, ‘와이드 스크린 바로크’에 대한 설명만을 취사선택한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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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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