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속의 뇌”에 덧붙이는 또다른 주석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통 속의 뇌 문제는 (신경계가 더 이상 뇌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우로보로스적인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통 속의 뇌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1), 그 통 속의 뇌에 주입하는 자극의 종류와 양을 이미 규명한 지적 존재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다(2).
(1)먼저 왜 통 속의 뇌가 성립하는가 생각해보자. 꿈이나 환각작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지각은 반드시 실재를 그대로 비추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이 왜곡을 눈치채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종의 합리화를 통해서 현실을 구성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기에, 우리의 의식이 평범히 깨어있을 때도 현실의 재구성은 일어난다(착시나 맹점 등). 이 논의를 따르면, 적절한 자극과 양분을 주면 인간의 뇌는 알아서 현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통속의 뇌가 만들어낸 현실(reality)을 정밀하게 조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러한 뇌의 발달, 필요한 양분, 기능정지나 과부하를 피하기 위한 자극의 정도를 계량하고 지급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누구에 의해 이뤄지냐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지금 “뇌”에게 인지되는 “이 현실”이 재구성된 것이나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 현실”과는 다른 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현실”이 계량과 계측을 통해 제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연장인 “외계”의 현실 또한 계량과 계측을 통해 제어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기묘한 환원론에 갇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