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기관과 “신뢰할 수 없는 글쓰기”

Ashihara NepuYona
3 min readJul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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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기관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 가장 강렬한 지점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신뢰할 수 없는 글쓰기”로까지 밀고나가는 극단성에 있다.

이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학살을 퍼뜨리는 수수께끼의 언어학자 존 폴을 좇는 셰퍼드 대위의 일인칭 회상에 의해 전개되며, 존 폴은 인구조절을 위해 학살을 조장하는 뇌의 부위 “학살기관”을 발견했으며 이 학살기관을 자극하는 언어적 특징 “학살문법”을 사용해 왔음이 밝혀진다. 이후, 결말에 이르러 셰퍼드 대위가 존 폴의 진실을 학살문법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미국이 혼란에 빠진다는 줄거리의 SF소설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혼란에 빠진 뒤라는 점, 그리고 셰퍼드 대위가 일인칭 회상으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소설 그 자체가 학살문법으로 쓰여졌음이 암시된다. 문제는, 작중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이 던져졌듯 이 소설을 이루는 학살문법은 “주인공 셰퍼드 대위의 의지로 학살문법을 퍼뜨린 것인지”, “대립자 존 폴의 학살문법 노트가 주인공을 감염시킨 것인지”, “학살문법이 발동하는 조건이 갖춰졌기에 발동한 것인지” 알 수 없도록 공중에 매달린 상태에서 작품이 끝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글쓰기에 양념을 더하는 부분은 셰퍼드 대위의 거짓 성장이다. 셰퍼드 대위는 교양소설의 전형처럼, 여러 장소를 횡단하며 자신이 타인을 착취해 유지되는 시스템의 기득권자라는 사실과, 로맨스적인 감정을 품었던 루치아의 죽음에 언어=기호의 세계로 환원할 수 없는 잉여를 알게 된 것처럼 굴지만, 실은 이러한 서사는 무책임한 복수에 대한 정당화로 수렴하며 셰퍼드 대위의 “성장”은 이뤄지지 않는다.

즉, 언어의 의미를 무시하고 곧바로 효과를 일으키는 학살문법이란 개념*이 소설의 내러티브와 문체와 공명하도록 쓰여졌단 점에서, 학살기관은 소설 안에서 “신뢰할 수 없는” 이란 형용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오스틴의 화행이론조차 무시하는 개념으로, 수행문과 달리 의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이토 케이카쿠는 이러한 기묘한 글쓰기(라캉의 말을 빌리면 절대적 시니피앙이라고 할까)를 사변적으로 착지시키지 않고, 어머니에 대한 사망선고, 엑셀 프로그램에 올라야만 살아남는 소년병들, 화학적인 요법=통각마취, 계수되지 않는 자들의 존재 등의 삽화를 제시하여, 여러 과학적/사회적 기술을 통한 언어의 육화로 포착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p.s. 세기말 하모니는 신뢰할 수 없는 글쓰기인 학살기관의 거울상으로, 절대적인 신뢰가 보장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투안의 글쓰기가 문면상 모호하고 사비私秘적이더라도 etml 기술/기입이 의사소통의 불투명성(우편불안)을 일소해, 내면=의식=비밀을 철저하게 없애버리는 파시즘으로 귀결한다.

국문학자 황호덕의 말을 빌리자면 “내면을 없애는 활동이야말로 파시즘의 본질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 즉 우편, 미디어, 해석적 교권을 장악함으로 비로서 파시즘이 꿈꾸는 공공성은 실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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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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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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