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 타르 — “지랄한다, 백인 개새끼야”
오늘 TAR라는 백인 남자 쓰레기가 만든 영화를 보고 왔고, 백인 남자 쓰레기가 만든 영화답게 쓰레기였다.
TAR의 내용은 이렇다. 베를린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 그녀는 여성에 레즈비언이지만, 훌륭한 실력과 우수한 실적으로 유명하다. 반면 그녀의 예술관은 매우 보수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며, 수업 도중에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바흐의 곡을 거부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망신주기도 한다. 학생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지랄한다, 쌍년아(You are a fucking bitch)”라고 욕하며 수업을 박차고 나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아주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목적에 따라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민주주의적 시스템과 룰을 무시하며, 타인의 고통에 아주 무관심하다. 여기까지가 1장의 세팅이다.
우리는 이 극이 어디로 흘러갈지 잘 안다. 그녀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이건 풍자극이다. 마이너리티이기에 더욱더 보수적으로 행동해야하고, 마이너리티에게 엄하게 굴어 그들을 밀어내야 하는 중산층/엘리트들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내 판단은, 바흐의 곡을 지휘하기 거부한 학생과 아주 똑같다.
“지랄한다, 백인 개새끼야”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몰락한 타르가 간 곳은 아시아다. 어딘지는 모른다. 영화에서 분명히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어 중에 가이드가 ‘지옥의 묵시록’의 로케 장면을 얘기하는 걸 보면 필리핀 같긴 한데 알 수가 없다. 왜? 정작 엑스트라들은 모두 태국어를 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 크레딧의 로케이션을 보니 “London, Berlin, East Asia”라고 뜬다. 아, 놀라워라. 내가 살던 곳은 사실 런던이나 베를린 같은 도시였구나. 지금 바로 지옥의 묵시록 로케 장면을 찾아가 볼 수 있겠구만!
게다가 동아시아에서는 약사에게 “등이 아파서 마사지 샵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매춘장소를 알려준다고 한다 ^^ 와 한국에 널린 마시지 장소는 죄다 매춘장소였나 봐! (그런 곳이 있단 사실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동아시아’ 약사에게 ‘등이 아파서’ 마사지 샵을 알려달라고 할 때 그렇게 말해줄 확률이 얼마나 될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몰락한 지휘자가 마지막에 지휘하는, 제일 저 밑바닥이 어딘줄 아는가? 몬스터헌터 오케스트라 콘서트다. 그리고 관객들은 죄다 코스튬 플레이어들이다. 아, 그렇겠지. 누가 티셔츠 정도 입고오고 코스튬 플레이가 줄 설 때 방해되거나 너무 덥다고 생각하겠어? 나는 진짜 게이머가 아니었나보다!
물론, 다 이유는 있다고 한다.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니 원래 필리핀으로 하고 싶었지만 촬영 중에 락다운이 걸려서 태국으로 바꿨다고 한다. 몬스터헌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이며, 그 게임의 곡은 죽은 백인들에 의해 쓰여진 클래식과 달리 살아있는 사람이 쓴 살아있는 곡이기에, 또 코스튬을 갖추어 입고 올 정도로 열성적인 팬들을 보유한 곡이기에, 어떻게든 새롭게 음악을 계속하려는 주인공을 그리려고 했단다.
그리고 이 모든 인터뷰를 읽고 내 생각이 바뀌었을까? 아니다.
태국에서 찍었으면 태국이라고 성실하게 표기했어야 했다. 몬헌 콘서트를 묘사하고 싶었으면 적어도 몬헌 콘서트를 한 번이라도 가봤어야 했다(특히나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그런 식으로 옷 입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게이머들 중에 클래식에 관심이 많고 이런 콘서트가 어느 정도 ‘캐주얼’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바흐는 정치적인 논쟁을 하기 위해 곡을 쓰지 않았다. 타르는? 풍자를 하는 주제에 게으르기 짝이 없는 묘사로 풍자되는 대상과 풍자하는 주체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아시안 게이머란 정체성을 가진 나로서는,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바흐의 곡을 지휘하기 거부했던 학생과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이 영화 전체를 거부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한다.
“지랄한다, 백인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