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Parody・Yuri(한국어판) ①
『<harmony/>』&『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Introduction ~살백합현장에서~
Q : 이 작품, 백합인가요?
이 질문은 백합 매니아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문장이리라. 또한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두 소설 작품, 이토 게이카쿠의 『<haramony/>』와 사쿠라바 가즈키의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또한(이하, 각각『하모니』와『독서클럽』으로 표기) 이 질문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답변은 이와 같다 :
A : 아니오, 엄밀하게는 백합이 아닙니다.
“백합이 아닌 작품 따위에 들일 시간은 없다”는 분, 이 시점에서 글을 읽는 것을 중지해도 좋다. 글쓴이로서는 엄밀하게 백합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알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글이었다고 본다. 물론, 그 이유를 듣고자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며, 엄밀함의 의미가 신경쓰이는 독자나 반론을 내세우는 독자도 있을 것이기에, 글쓴이로서 그러한 리퀘스트에 제대로 답변할 의무가 있다. 여기서 서둘러 용어의 정리를 해두고 싶다만, 이 글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백합 혹은 현재의 여러 작품군에 대해서는 백합이라고 수식 없이 표기하되, 전통적으로 그렇다고 인식되어온 백합의 이미지나 스테레오타입의 백합을 따옴표로 “백합”이라고 표기한다.
이 문제, “당신은 어째서 이 작품들을 백합이 아니라고 판단했나요?”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픽션의 한 장르로서 백합이나 백합물을 정의해야만 한다. 어느 것이 백합이고 어느것이 백합이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는 백합을 정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하모니』와 『독서클럽』을 “백합의 패러디”로 보는 것으로, 백합이란 장르가 갖는 역사적 성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을 이 글의 목적으로 삼는다. “백합의 패러디” 역시도 백합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는, 조금 복잡하다만, “백합의 패러디”는 백합에 포함되나 “백합”은 아니라는 이해 위에서 이 글을 읽어나갈 것을 권한다.
또한, 이 글은 일단은 에세이로 분류되겠으나, 필요에 따라 학술적 논문을 인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각종 백합작품의 중요한 플롯이나 결말까지 적극적으로 다룰 것이기에,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는 독자가 있다면 여기서 이 글을 접어주시기 바란다.
Profiling The Parody Of Yuri
나는 『하모니』와 『독서클럽』이 엄밀하게는 백합이 아니라고 조건부의 답변을 적었다. 이 작품들은 백합으로 해석될 요소를 갖고 있으나, 내가 타인에게 백합물로서 추천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걸리는 중대한 요인은 두 작품 속 “남자의 존재”다. 먼저 『하모니』의 경우에, 등장인물인 ‘미히에 미아하’에게 있어 그녀의 성격 및 인격을 형성하고, 테러 행위를 일으키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으로 “이웃에 살던 남자아이”의 자살이 결말부에 가서 밝혀진다. 『독서클럽』의 경우, 에피소드「가라스마 베니코 연애사건」에서는, 미션스쿨 ‘성 마리아나 학원’에서 생도들의 인기투표로 ‘왕자’가 된 가라스마 베니코가 실은 남자와 사귀고 있었단 사실이 나중에야 발각되어 그것을 계기로 학원에서 중퇴한다. 또한, 에피소드 ‘성 마리아나 소실사건’에서는 이 미션스쿨의 설립자인 성녀 ‘마리아나’가 실은 그녀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낀 오빠 ‘미셸’의 여장이었단 사실이 밝혀진다.
말해두건데, 나는 어떤 작품이 백합이기 위해서는 남성의 존재를 말소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교조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두 작품에서 “남자의 존재”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독자들이 주목해주기 바란다. 어느 쪽 작품도 “백합”으로 해석될 요소를 갖고 독자로 하여금 “백합”을 기대시키면서도, 결말부에 와서 ‘남자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으로 이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단지 ‘백합’이란 해석이 독자 멋대로의 착각이라거나, 그러한 결말이 이야기를 수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여기까지 작성할 이유도 없다. 어느쪽이든 명확한 의도를 가진 “백합의 패러디”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자들을 기대시키고, 어떻게 배반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하모니』는, 인류가 건강과 배려를 그 지상가치로 하는 ‘생명주의’ 아래 형성된 근미래 감시사회를 그리는 SF작품이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키리에 투안’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 ‘레이카도 키안’과 함께 학내에서 카리스마적 존재인 ‘미히에 미아하’에게 끌려 세 명이서 생명주의 사회에 대한 거부를 표하기 위해 단식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둘은 실패하고 미히에 미아하만이 자살에 성공한다. 이 날을 계기로, 키리에 투안은 미히에 마아하의 그림자를 좇아 그녀처럼 되고자 노력한다. 성인이 된 투안은 전장을 전전하는 WHO 의 ‘나선감찰사무국’의 감찰관이 되나, 레이카도 키안을 포함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자살하는 테러 행위와 그 뒤에 드리워진 미히에 미아하의 기척을 좇아 조사를 시작한다…
이렇게 플롯을 정리해보면, 여기서 가장 강하게 관계가 묶여있는 것은 키리에 투안과 미히에 미아하처럼 보인다. 작중 표현에 따르면, 미히에 미아하는 생명주의를 증오하여 행동에 나설만한 ‘병사’나 ‘동지’로 키리에 투안과 레이카도 키안을 선택한 한편, 키리에 투안은 미히에 미아하에 대하여 동경이나 신앙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고 있어, 작중에서도 몇 번이나 이것은 프라이빗한 조사일 뿐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렇게 보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 속에서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러나, 우리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히에 미아하는 결말부에 “이웃에 살던 남자애”의 자살이 그녀의 인격이나 행동에 강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하며, 키리에 투안은 친구 레이카도 키안을 자살하도록 꾸민 미히에 미아하를 용서할 수 없어 결국 그녀를 죽이는 데에 이른다.
조금 부끄러운 문장이 되겠으나, 일부러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을 묘사해보자.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로 뭐든지 알고 있으며 할 수 있는 천재에, 허스키한 보이스로 타인에게는 차가운 미녀, 미히에 미아하.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녀의 마음에 들게 된 내성적이고 자신이 그렇게까지 특출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키리에 투안.
이렇게 쓴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어째선지” “백합처럼” 보인다. 이 “어째선지” “백합처럼” 보이는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다루겠으나, 이에 동의한다고 하면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이 백합이라고 기대하게 만든다’는 추측 자체에 무리는 없으리라. 이 기대에 답하듯이 작중에서 화자 키리에 투안은 집요하게 미히에 미아하와의 추억에 대해 서술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서로에게 그렇게 커다란 존재는 아니었다”고 결론 짓고 있는 것이다. 즉, 『하모니』에 있어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결말(과 거기서 말해주는 “남자의 존재”)이 기능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백합”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거스르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문학 연구가 미하일 M 바흐친이 말한 패러디적 양식화의 성질 — “재현하는 담론은 재현되는 담론에 대하여 투쟁하며, 재현되는 담론의 생산적인 도움을 얻기보다는 그 담론의 실상을 폭로하여 그것을 파괴하는 것으로 실제 대상의 세계를 그리”는 작업에 가깝다.
『독서클럽』은 『하모니』보다도 패러디로서 노골적이다. 『독서클럽』의 무대는 위에서도 썼듯이, ‘성 마리아나 학원’이라는 1919년 설립된 가상의 미션스쿨이다. 이 소설은 “닫힌 소녀들의 낙원”인 ‘성 마리아나 학원’ 안에서도 “다운타운의 지저분한 펍”에서 “노동자들이 모여 맥주 1파이튼을 마시며 낡은 신문지에 싼 피쉬 앤 칩스를 먹는”듯한 ‘독서클럽’ 부원들에 의한 독서클럽지란 설정으로, 1960년대부터 2019년까지의 이벤트를 기록하고(단, 그 순서와 내용은 믹스되어) 있는 연작소설이다.
『독서클럽』은 그 설정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미션스쿨의 여학생들’ 중에서도 소외된 ‘독서클럽’ 부원들의 시점에서 기록하는 것으로, 그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품이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패러디의 수법이다. 물론, 이 소설이 패러디하는 대상은 소녀소설 전반이지 백합이라고만 단언할 수는 없으나, ‘미션스쿨의 여학생들’이란 이미지가 “어째선지” “백합처럼” 보이는 독자들도 절대 적지 않으리라.
물론, 2020년에 “백합”이 “미션스쿨에서 여학생들이 꺄하하 우후후하는 장르지?”라는 소리를 듣고있어서야 백합 매니아로서 울분이 터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그러나 그것이 “어째선지” “백합처럼” 이야기된 시대가 분명히 있으며, 이를 패러디하는 작품들(예를 들면, 만화 『마리아 홀릭』, 만화『나의 백합은 일입니다!』)도 존재한다. 덧붙여 말하면, ‘사회인 백합’이 그렇게까지 특수한 장르가 아니게 되었으나, ‘사회인’이라는 수석어가 붙어있는 것은 적어도 그 초기에는 백합의 특수형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리라.
자, 이야기를 『독서클럽』으로 되돌리자. 『독서클럽』에서 첫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가라스마 베니코 연애사건”은, 『독서클럽』이 이제부터 행할 작업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볼드하게 선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69년, ‘가라스마 베니코’는 오사카에서 동경에 있는 ‘성 마리아나 학원’에 전학오게 된다. 그녀는 귀족적인 외모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오사카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우연히 학원에 전학오게 된 것으로, 다른 학생들과는 친해지는 것은 어려웠다. 그녀는 학교 내의 보금자리를 찾아서 ‘독서클럽’에 입부하게 되나, 거기서 못생긴 외모 때문에 독서클럽에 흘러들어온 ‘세노 아자미’가 베니코를 이용해서 학원을 지배하고자 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자미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발판으로, 베니코를 ‘가짜 남자’이자 ‘여왕벌’이 되게 만드는 계획— 즉, 그녀를 학원제의 투표에서 선발되는 ‘왕자’ 만들기 계획에 돌입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인용하여, 이를 소녀소설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으나 우리들의 관심사는 아니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도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아자미가 선택한 ‘왕자’의 타입과 롤플레잉이다. 아자미는 먼저 소녀들의 “억압된 성욕”을 “발산”할만한 “안전하고도 화려한 스타”인 “왕자”의 타입으로 “불량소년”을 고른다. 아자미의 판단에 따르면 “소녀의 마음”이자 “성욕이 도달할 곳”은 “고독한 아웃로우”였다. 아자미는, 그 위에서 베니코에게 같은 독서클럽 부원인 ‘무라사메 쓰보미’와 “사랑을 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아자미의 각본은 이렇다. 베니코는 먼저 쓰보미가 차에 치일 뻔한 사고로부터 구출한다. 무라사메 쓰보미는 “눈이 동글동글하고 가슴이 유달리 큰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로 “청순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불량소년’ 베니코에게 단 하나 뿐인 친구인 “그 누군가”되어, “사랑”이 고독해 보였던 ‘불량소년’ 베니코를 부드럽게 만든다. 이 연기가 얼마나 세심한지 본문에서 인용해보자.
“두 사람은 학교 여기저기에서 마치 그곳이 둘만 존재하는 아름다운 폐허라도 되는양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미소지었다. 쓰보미는 절대 베니코 앞에서 나대는 일 없이 언제나 무릎을 꿇고 있거나 약간 떨어져 앉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야말로 소녀들이 꿈꾸는 베니코와의 우정 그자체였다.(강조는 필자에 의함)
그 뒤에, 학원의 수녀님에 의해 두사람의 “불순한 동성 교제”의 사실이 목격된 것을 도리어 역전의 기회로 삼아, 아자미는 베니코로 하여금 쓰보미에 대한 “사랑”을 고백시킴으로써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베니코를 왕자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 속에서 아자미가 베니코에게 시킨 “우리는 한없이 정신적인 존재”라는 대사는 여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았으나, 베니코 자신은 “나는 여자야. 여자한테 육체 빼면 뭐가 남아?”라고 생각한 것도 언급해둔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아자미가 기획한 이 롤플레잉에서 어딘가 데자뷰가 일지 않는가.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를 두른, 고독하고 쿨한 불량소년 가라스마 베니코. 그리고 어째선지 그녀의 마음에 든, 아름답진 않으나 청순미 있어보이는(일본어 원문은 ‘가련해보이는’) 무라사메 쓰보미. 이 조합만으로도 “어째선지” “백합처럼” 보이지 않는가. 또 동시에, 아자미가 베니코에게 분명하게 “사랑을 해”라고 명령한 것에 비해, 여학생들은 “정신적”인 “베니코와의 우정”으로 받아들였던 것도 주목할만하다. 즉, 여기서 아자미는 여학생들의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백합”을 연출한 것이다.
베니코는 ‘왕자’가 되었으나, 그녀의 진짜 사랑은 불량소년을 연기하기 위해 실습차 밤놀이를 나갔을 때 만난 불량 공장 노동자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불량 공장 노동자와 연애하여 나중에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그녀는 학원을 중퇴하고 결혼할 것을 결심하여, “나는 지금 행복해요. 여러분도 남자를 만나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만, 그 “육체”인 “여자”의 “불순한 이성 교제”에 대해 여학생들은 “죽어버려!”를 연호한다. 이에 대해 베니코는 미련도 없이, 지금까지 봉인해뒀던 오사카 사투리로 “우짜서?”라고 대응한다.*
*원문에는 「…なんでやねん」 으로 어이없는 말에 가볍게 응수하는 표현이 쓰인 반면, 한국어판에서는 “…지랄하네.”라고 번역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든다.
이 전개는, 백합 매니아로서는 바라지 않는 결말이며, 이거야말로 근대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를 옹호란 비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베니코조차도 “그 애매함이 여자”라고 생각한 성 마리아나의 초상화는, 실은 남자였던 미셸의 여장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다음 에피소드에서 밝혀진다. 네 번째 에피소드 “초저녁 별”에서는, 자신의 ‘그 누군가’의 이름으로 다른 독서클럽 동급생의 이름을 내놓는 등장인물이 중심이 되어, 이 작품 전반을 가부장제로 복귀하는 여정으로 읽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 ‘가라스마 베니코 연애사건’ 에피소드가 해체하고 싶었던 것은 소녀들의 마음, 바꿔 말하면 ‘소녀들의 판타지’였으리라. 그러나, 우리들은 그 소녀들의 판타지로부터 “어째선지” “백합처럼” 느끼는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어째서 그 소녀들의 판타지 = “정신적인 존재간의 관계”에 대하여 베니코가 자신이 “육체”로 “여자”인 사실을 생각했을까. 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소녀만화 연구가 후지모토 유카리 씨의 개념,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어째선지”・“백합처럼”・“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 ①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란,후지모토 유카리 씨의 저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 — 소녀만화가 비추는 마음의 모습』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이 책의 「레즈비언 — 여자인 것을 사랑할수 있을까」 항목에서는, 소녀만화 중에서도 특히 ‘레즈비언물’이라고 불린 작품들을 분석하여 거기에 공통된 요소를 추출해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먼저, 주인공 두 사람이, 미인이면서 멋있고 분명한 성격의 슈퍼우먼 타입과 그야말로 소녀소녀하고 천진난만한 타입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 그것의 이미지를 따서 편의상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라고 칭하자.
다음으로, 이 두 사람 — 특히 장미 쪽이 가정적으로 불행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 사탕과자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으나, 이쪽도 어느 정도 불행하게 설정되어, 아무래도 장미 쪽에 경도되는 것은 가정적인 불행의 비율에 비례하는 것 같다.
(중략)
또한, 두 사람의 레즈비언 관계가 반드시 주위의 매정한 이들 사이의소문이 되어, 스캔들로 취급되는 것. 레즈비언인 걸 밝히겠다, 며 사진을 협박 재료로 삼는 것도 종종 등장하는 패턴이다 (중략) 그리고 그 결과, 적어도 사탕과자만을 지키고자 장미는 협박자를 죽이고 자살(『진홍빛으로 타오르다深紅に燃ゆ』), 혹은 절망해 자살에 가까운 죽음에 이르기(『그녀들彼女たち』,「하얀 방의 두 사람白い部屋のふたり」)까지, 전부 장미 쪽이 죽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더해서 그녀는, “두 사람이 실은 자매였다”란 설정으로 동성애를 자매애로 전환시키려는 작품이 다수 보이는 것이나, 그 중에서도 가벼운 터치로 동성애를 긍정하는 작품은 적다는 등의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단, 이 책의 초판은 1998년에 발간되었으며, 다루는 작품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소녀만화다. 이에 반해 다음 항목 「여성애 — 시대는 밝은 레즈비언」에서 소개되는 것은 이러한 양식으로부터 벗어난 90년대의 “밝은” 레즈비언이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것의 도착지는 자매애나 아웃팅 요소란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 백합”의 모습이다. 다만, 첫번째 조건인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의 조합 — 중심 인물 중 한 편이 미스테리어스하고 쿨한 미소녀며, 다른 한편은 밝고 활기찬 소녀로 설정된 것 — 은 백합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TV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2004)의 페이트 테스타롯사와 타카마치 나노하
「CANAAN」(2009)의 카난과 오오자와 마리아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2011)의 아케미 호무라와 카나메 마도카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2015)의 시부야 린과 시마무라 우즈키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2018)의 카구라 히카리와 아이죠 카렌
모든 사례를 리스트화한 것도 아니며, 이런 조합에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나, 여기까지 나열해두면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가 오랫동안 사랑받았다고 주장하기에는 충분하리라. 이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조합이, 『하모니』와 『독서클럽』으로부터 “어째선지” “백합처럼” 느끼게하는 요인이며, 해당 작품들이 패러디를 위해 사용한 기존의 이미지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동 저자인 후지모토 유카리가 2020년 2월 25일 한국의 서울대에서 행한 공개강연 “소녀만화 속의 여성간 사랑少女マンガの中の女性同士の愛”에서는, 이 레즈비언물의 공통요소에 추가적으로, 중심인물들이 ‘로미오와 줄리엣’ 과 같은 연극을 한다는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https://www.webtooninsight.co.kr/Forum/Content/6783). 이또한 지금까지 자주 쓰이는 요소라고 말해도 좋으리라(이를테면, 만화『이윽고 네가 된다』, TV애니메이션「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여기서 후지모토 유키라의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개념이나 레즈비언물에서 공통되는 요소들을 좀 더 넓은 시야로 포착한 한 편의 논문을 소개코자 한다. 『퀴어인문잡지 삐라』에서 연재된, 이서의 연작논문 「언니 저 달나라로」중 첫번째「언니 저 달나라로 : 백합물과 1910–30년대 동북아시아 여학생 문화」(2012)가 그것이다.
이서에 따르면, “진홍의 장미와 사탕과자”의 요소는 요시야 노부코의『꽃 이야기花物語』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후지모토 유카리도 마찬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이서는 여기서 더욱 논의를 넓혀서 이 『꽃 이야기』와 현대의 백합물 간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다른 요소들을 지적한다.
이 논문에 의하면, 1910년대로부터 1930년대에 걸쳐있는 근대적인 “여학생”의 이미지가, 백합물에서는 노스탤지어로써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1910년대~1920년대의 통속연애소설에서 사용될법한 프랑스어로 서로를 부르는 습관(TV애니메이션「스토로우베리 패닉」, 만화『디어 브라더』)나 메이지 시대풍의 학교시설(만화『푸른 꽃』), 아가씨 학교(『마리아 님이 보고계셔』)등이 그러하다. 또한 이러한 레즈비언적 체험이 어디까지나 학교 내에서 일어난 일로 설정되어, 많은 경우 “어느 한쪽이 죽거나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사망 : 『디어 브라더』의 레이, 「신무월의 무녀」의 치카네,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하츠미 // 사라짐 :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의 시오리, 「소녀혁명 우테나」의 우테나)고 이서는 주장하고 있다.
이서의 논문은 2012년에 쓰여져 있는 이상, 그 시기로부터 보아도 현대백합물의 경향을 잘 포착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근대적인 “여학생”의 이미지가 “미션스쿨에서 여학생들이 꺄하하 우후후~”와 같은 “백합”에 대한 낡은 이미지와 겹쳐있다는 지적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하모니』와 『독서클럽』의 패러디 요소를 분석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유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서도 그 예시로 들고 있는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의 3권 「가시나무 숲」에서도 태평양 전쟁 전의 소설이란 요소를 이야기 속에 넣음으로써, 근대적인 “여학생” 요소나 그것이 반영된 에스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의 영향력(https://www.hayakawabooks.com/n/n377845272272)을 생각한다면, 『하모니』나 『독서클럽』이 직접적으로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작품들이 모방하고자 하는 ‘백합’에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따라서 ‘백합의 패러디’ 작품에도 근대적인 “여학생”의 이미지가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후지모토 씨도 이 씨도, 분석 대상이 되는 작품들이 어째서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나가는지 이유를 분석하고 있으며, 양쪽 다 우리에게 중요한 관점이지만, 지금은 잠시 보류해두자.)
『하모니』의 경우에는 근대적인 여학생 이미지와는 다르지 않은가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이를 뒷바침하듯이, 주인공 세 명이 만난 학교가 여학교라는 암시도 없으며, 근대적인 건축물조차 이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곳은 있으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세 명이 성인이 된 뒤다. 여기서 나는 『하모니』의 세계야말로 커다란 미션스쿨에 지나지 않는다, 고 주장하고자 한다. 『하모니』 세계에서 공항을 묘사한 장면을 봐보자.
권위적인 공간이나 강박적인 색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제거한 공항의 로비를 발빠르게 가로지른다. 자홍빛 인테리어에, 옐로의 테블군이 한층 더 눈에 띈다. 짐을 손 뒤로 끌면서 지하철로 향하는 내게, 키안이 붙어서 걸어온다. 이렇게나 천장이 높고 이렇게나 넓은 공간인데도, 여기서는 조금도 권력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가 없는 것이 생부 스타일. 거대한 건축공간이란, 파쇼의 냄새와 모뉴멘탈이고자 하는 권력의 방자함이, 어떤 식으로든 부정할 수 없이 배어나오는 법이다. (중략) 그러니까, 이 냄새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소름끼칠 정도로 ‘상냥함’과 연관된 테크놀러지가 대량동원되고 있을 터.
물론, 『독서클럽』 의 배경인 ‘성 마리아나 학원’은 그 중앙에 ‘성 마리아나 동상’이 있으며, 수녀들이 학생들의 관리자로 존재하기에 『하모니』의 공항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인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학교생활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공간으로 보더라도, ‘성 마리아나 학원’은 학생들 간 계급이 분화되어 있어, 『하모니』의 세계와는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성 마리아나 학원’이 현실에 존재하는 미션스쿨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다가 어디까지나 ‘독서클럽’ 부원들의 눈으로 묘사되었단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성 마리아나가 생각했듯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는” 이념을 학생 전원이 자발적으로 실천한다면 어떨까. 거기에 성 마리아나를 환기하는 초상화나 동상이 필요할까.
(Yuri・Parody・Yuri②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