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

Ashihara NepuYona
3 min readAug 28, 2022

어제 일본인이 ‘오늘 10/26 소재로 한 한국영화 봤는데, 한국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고 좋았어요’ 이러길래 ‘아 그거 괜찮죠 그런 소재인데 유머러스한 터치도 좋구요’란 식으로 응답했는데… 오늘 보니 내가 말한 건 『그 때 그 사람들』(2005)이었고 그 사람이 본 건 『남산의 부장들』(2019)였다.

그래서 오늘『남산의 부장들』을 봤는데… 다 보자마자 허겁지겁 『그 때 그 사람들』 다시 틀어보았다. 『남산의 부장들』은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다. 첩보 스릴러로 매끈하게 재구성된 이야기는 김재규(작중명 김규평)의 심리에 맞추어 흘러간다. ‘보스’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미국으로부터 받는 은근한 기대감, 경호부장 차지철에 대한 질투, ‘보스’의 잘못된 선택으로 불안해지는 국내 정황… ‘입체적’인 캐릭터의 갈등을 ‘보편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에 이 작품은 『그 때 그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나 왜소한 작품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이 갖는 진짜 가치는 권력자들을 비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역사는 권력자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보여주려고 했단 점에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김규평이 육본에 도착하면서 끝난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그럼 저 박정희 시체는 누가 치웠을까?’
‘박정희 옆에 있던 여자는 어디갔을까?’
‘아니 심수봉씨는 그렇다치고 애초에 그 여자는 어디서 온 걸까?’
‘김재규 부장 밑의 차장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런 인간들도 가족이 있을까?’

『그 때 그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진지하게 답한다. 이렇게 비중을 조정한 것은 분명 의도적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은 권력자들이 대단해보이고 엄청난 자리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역사는 그들이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들의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볼 때 『남산의 부장들』은 당연히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고 인간적인 고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 10/26 암살 사건을 다루면서 그들이 더 비중있게 다뤄져야 하나? 정말로 그들의 고뇌가 박정희 시체를 치우고, 차지철 부장을 확인 사살을 하고, 술자리에 불려가 노래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고뇌보다 무거운가? 박정희와 차지철과 김재규의 얘기만 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이런 질문들 앞에서는 침묵한다.

한 편으로, 이런 관점은 결국 역사적 한계가 있긴 하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아고”가 맥거핀으로 나오는 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입신양명하여 굉장한 권력을 쥐게 되었지만, 사소한 오해 때문에 질투와 의심에 시달리는 권력자 “오델로”와 그를 부추겨서 파멸시키려는 부하 “이아고”, 그러니까 작중에서는 CIA가 박정희를 “오델로”라고 보았단 뜻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만 알고 있으면, 『남산의 부장들』의 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대충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다는 영화의 암시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한국인이 아니어도, 한국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그 누구라도 ‘비극’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영화다. 『남산의 부장들』이 택한 ‘탈역사적 역사 희비극’은, 최고 권력자와 그에게 매달리는 부하들의 치정극의 모습으로, 쉽게 말하면 BL처럼 그리는 것을 택했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한국의 “느와르 스릴러” 장르와 찰떡궁합이 되도록.

나는 물론 『그 때 그 사람들』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충분한 역사적인 배경이나 의의를 알지 못한다면, 『그 때 그 사람들』이 도전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기 힘들 것이며, 그 점에 있어서는 결국 『남산의 부장들』이 더 널리 보편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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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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