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 수성의 마녀」2기 3화(15화) 감상

— 유산의 행방에 대해

Ashihara NepuYona
5 min readApr 24, 2023

일단 「코드기어스 : 반역의 를르슈」나 「프린세스 프린서플」에서 각본가 오코우치 이치로가 보여줬던 식민지나 레지스탕스 묘사와 달리, 지구가 착취당하고 있는 상황이나 그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아주 세심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이 괄목할만하다. 매파인 노레아 듀노크가 일방적으로 비둘기파인 니카 나나우라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어서 편파적으로 흐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전 에피소드에서 동료였던 소피가 죽어버려서 흥분했단 점이나, 지구 난민캠프의 묘사 등을 통해서 시청자에게 양쪽의 관점을 납득시킬 밸런스를 잡았단 점은 높이 칭찬할만하다. 또, 지구에서 무기의 스펙은 모자라지만 재래병기와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저항하는 방식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자, 개설적인 부분은 이 정도로 갈무리하고, 좀 더 재밌는 얘기를 해보자.

아는 분은 「수성의 마녀」를 우테나 계보에 접속해서 본다면, 구엘이야말로 ‘텐조 우테나’의 주제를 이어받은 인물이 아니냐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 분에 따르면, 우테나라는 인물의 원래 목적은 ‘왕자님’이 되는 것, 즉 기존의 권력 구조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었으나, TV애니메이션 ‘우테나’는 그것만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는 회의론으로 끝을 맺었다.

여기에 더해 생각해보면, 본래 트로피를 쥐고 있던 홀더(= ‘왕자님’)으로서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 계승)을 목표로 하던 구엘은 (윤리 감각은 결여되어 있지만) 텐조 우테나와 인식의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그는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박탈당하게 되고, 아버지를 의도치 않게 살해함으로써 ‘제타크 왕국’을 붕괴시켜버렸다. 그로써 그는 더 이상 ‘계승’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내가 약간 더 코멘터리를 더하면, 여기서 아버지를 ‘의도치 않게’ 살해했단 부분은 꽤나 중요하다.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없으나, “부계사회는 부친살해를 통해서 단절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새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으로써 부계사회의 구조는 온전히 계승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죽이고 아버지가 되었던 것처럼. 구엘은 실질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질서’를 찾은 게 아니다. 그 스스로가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했던 물음에, 그리고 소녀를 구하지 못한 채 죽게 만든 실패에, 그런 부계사회의 붕괴가 담겨있다.

어쨌든, 그 분은 이런 관점에서 구엘이 지금 짊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왕자가 될 수 없는 소년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요구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하고 15화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생각인데, 계승 혹은 유산이라는 키워드로 보면 「수성의 마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성의 마녀」에 대한 감상에서 흔히 ‘프로스펠라는 해로운 어머니(毒母)’라는 표현이 쓰이곤 하는데, 내가 보기에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이상을 딸이 대신 실현해 주길 바라기에 특정한 일을 강요하는 어머니’라거나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자식을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어머니’라는 의미로 쓰였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프로스펠라는 델링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더 나은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자식의 의견을 취합하는 일 없이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녀가 에어리얼과 슬레타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맞지만,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인다. 그러나, 그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을지 혹은 어떻게 처분할지는 부모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작가, 사카구치 안고는 ‘부모가 있어도 아이는 자란다’고 말한 적 있다. 미오리네든 슬레타든 ‘주식회사 건담’을 설립한 시점에서 부모들로부터 받은 ‘유산’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유산을 짊어지고도 부모들의 계획을 ‘계승’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결말, 즉 (템페스트의) 프로스페로가 자식들의 사랑을 보고 마법을 포기하며 요정 에어리얼을 해방시킨 결말을 참조해보면, 그녀들의 행방에 낙관적인 기대를 품어도 될 듯하다.

샤디크 역시 마찬가지로 계승이나 유산이란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악역 편에 서게 되었지만, 행동으로 봐서 의붓아버지를 단순히 도구로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직접적으로 협박하거나 감금하지 않고 설득하려고 한 것이 진심이라면, 살리우스를 아버지로서 인정하고 키워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의 시야는 좁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그는 ‘상징적인 부친살해’를 통해서 ‘부계사회’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특히 이번 화의 마지막에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살리우스를 앞에 두고, 샤디크가 책상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며 자신의 이상을 말하는 장면은 동물들의 마운팅을 연상케 한다.

그가 미오리네를 단순히 트로피 정도로 생각했던 구엘과 달리, 미오리네를 안전한 영역에 가두어 두려고 했던 것을 고려해보면, 샤디크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더 명확해진다. 미오리네가 구엘에게 구타를 당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넘겨지는 것보다 나으니까 구엘에게 그대로 맡겨야 한다고 “그 어떤 상의도 없이” 판단한 그의 행동은, 미오리네의 ‘아버지’ 델링 렘블랑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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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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