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지 않은 문학작품들

Ashihara NepuYona
5 min readMay 7, 2023

내 창작 방향성이란 것을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보다도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무언가를 구상했다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혹은 그 중에서 가장 쓰고 싶지 않은) 두 가지를 얘기해보고 싶다. 하나는 “오른손잡이 전용” 문학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다크 투어리즘적”인 문학작품이다.

먼저, 오른손잡이 전용부터. 우리는 오른손잡이들의 세계의 살아가고 있고, 나도 오른손잡이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크게 괄시를 당하거나 강제로 교정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왼손잡이들을 위해 이뤄져 있지 않다. 지하철 개찰구는 왼손잡이들이 손을 뻗기에 불편하게 되어 있고, 문고리는 대부분 문의 오른쪽에 달려있으며, 게임 패드에서 빠르게 엄지를 놀려야하는 버튼들도 전부 오른쪽에 달려있다. 물론, 왼손잡이들은 훈련을 통해서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고 또 일상으로 살아간다. 내가 굳이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예시를 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손쉽게 ‘마이너리티’만을 생각하지만, 왼손잡이는 절대 소수자가 아니다(혹은, ‘마이너리티’들은 왼손잡이 중에서도 극단적인 케이스라고 해야하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른손잡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왼손잡이들은 사사로운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우리가 그들이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이상 그것을 보조해줄 제도를 마련해야하고, 그런 제도를 요구하는 일 =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는 일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와 현실 정치 모두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한때 “일상계”라고 불리우는 장르가 한 때 일본 애니메이션 계를 휩쓴 적이 있다. 지금은 그때만큼 대히트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장르는 적절한 위치에 안착해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상은 보통 “오른손잡이”들의 일상이다. 아무도 <사채꾼 우사지마>나 <연장 아빠(連ちゃんパパ)>를 ‘일상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웃기지 마라, 시부야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게 거대한 파칭코 점이고 그 옆에는 학생들도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대부업자들로 한가득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지워버린 뒤에 만들어낸 “오른손잡이 전용”의 일상으로 가득채운 작품들. 물론 오른손잡이들에게도 희노애락이 있다. 오른손잡이들도 편한 삶만을 살고 있지는 않으며, 고통과 좌절을 겪고 또 그것을 극복해가는 감동적인 일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런 “오른손잡이 전용”의 작품만은 쓰고 싶지 않다.

반면, 위의 경향에 반대 방향으로 너무 나가버리면 “다크 투어리즘적”인 작품이 되어버린다. 다크 투어리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여유는 없다만, 여기서는 뜻하지 않은 죽음과 재난이 발생했거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직접 방문해 자기반성을 하고, 교훈을 얻기 위한 여행”이라고 해두자. 미리 강조해두지만, 나는 그 다크 투어를 통해 의미나 교훈을 얻은 사람들의 경험 자체(즉, 그 의의)를 부정하거나, 혹은 ‘결국은 관음증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잖아?’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하면 모든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서사 작품들은 ‘다크 투어리즘’이고 ‘관음증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이것을 피해가기 위해 많은 시도들이 이뤄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크 투어리즘을 중심으로 그 지역을 관광지화하자는 주장들이다. 이런 소리를 하는 머저리들은, 관광을 얕잡아보고 있는 거다. 관광이란 건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는 어려운 사업으로, 성수기와 비수기가 확실히 갈리며, 또 성수기라고 해서 반드시 관광객이 많이 들어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농업이나 어업같은 일차산업도 분명 그런 면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요소들에 민감한 게 관광사업이다. 관광사업을 위주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도래와 함께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비틀거리는 그리스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죽음과 재난이 발생했거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관광지하는 순간 그 곳은 정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또, 그것을 막기 위해서 지원을 하자고 주장할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대부분의 경우 그런 지원은 국가에 의한 것이 되며 국가가 원하는 방향의 ‘교훈’을 얻고 사람들은 돌아갈 것이다.

반대로 다크 투어리즘 중심의 관광지로서 그 지역이 안정화되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 지역은 “여전히” 다크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러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덜 다크해지면 사람들은 실망해서 점점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고, 더 다크해지면 그 비극성만을 반복하는 침울한 지역이 되어버린다.

내가 보기에, 결국 “다크 투어리즘”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른손잡이”들이다. 한 번도 그 “다크 투어리즘” 지역에서 30년, 40년 살아갈 생각을 해본적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다. 그리고 문학도 마찬가지다. 소수자 문학이나 고발 문학에는 분명히 의의가 있다. 내가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김사량의 <빛 속으로(光の中に)>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누가봐도 고발 문학의 범위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이 “다크 투어리즘”이 되어버려서는 안된다. “왼손잡이”가 “다크 투어리즘”을 쓰는 경우도 많고, 또 그렇기 때문에 더 높이 평가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스스로 계속 더 높은 자극을 추구하여 안정화된 “다크 투어리즘” 지역의 딜레마를 겪게 된다(내가 삶과 글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삶과 글을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인가 사람은 독자들이 제공받고 싶어하는 것만을 하며 살아가는 광대로 전락한다). 반대로, “오른손잡이”들이 반성하고 교훈을 얻기 위한 작품을 계속 써내려간다면, 그 작가는 “다크 투어리즘”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런 “오른손잡이 전용”이 아닌 글을 써야한다면, 적어도 “다크 투어리즘”이 되서는 안된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모두가 그 사건들의 ‘관계자’가 되어서 ‘우리’라고 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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