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단발머리가 어울리지만』 Act1
이 책을 펼친 당신은 나와 같이 2018년 12월 1일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마녀이거나, 혹은 그 피에 불꽃이 깃든 후세의 마법소녀일 것이다. 그 날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저 ‘그 날은 흐리지 않았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겠지만, 불꽃의 피가 흐르는 우리들은 먼저 재로 뒤덮힌 하늘을 떠올일 터이다. 도약하는 까마귀로부터 떨어지는 깃털과 같이, 밤하늘을 뒤덮은 무수한 파편들을.
이런, 내가 너무 성급했나? 당신이 그 날에 대해 충분히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2018년 12월 1일 이전의 과거로 거슬러 오를 필요가 있다. 독자여,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의 도입이란 시계열의 제일 앞 부분에 위치하지 않아도 되고, 나 또한 그 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숫자의 문자를 준비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렇게 쓰여지고 있는 나의 문장의 앞에 먼저 그녀가 있었음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그렇다, 그녀 — — 카게우라 나츠의 증언은 어느 날의 재회에서부터 시작한다.
Act1. 시니컬 러브 송
2018년 11월 29일, 밤하늘 아래 두 여성이 놀이터에 마주 앉아 있었다. 둘 다 소녀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모습인지라, 마치 억지로 짜깁기한 합성사진 같았다. 한 명은 자켓도, 바지도, 단화도, 손가방도 전부 검은색의 옷을 입을 하고 있지만 오렌지 색의 목걸이가 두드러지는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노란색 후드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하얀 반지를 낀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온통 검은 색으로 몸을 뒤덮은 쪽은 미끄럼틀에 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있었고, 후드를 입은 쪽은 시소에 앉아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도, 그녀들은 20분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잘 어울린다, 단발머리”
검은 색 옷을 입은 쪽 — — 카게우라 나츠가 먼저 침묵을 깼다.
“고마워요, 나츠 언니, 아니, 음”
“왜 그래?”
“나츠 선배한테도 추천해요. 머리감는 시간도 짧아지고, 상쾌하답니다.”
“나츠, 선배?”
“싫으신가요?”
“아니. 나츠 언니보다 무거운 말투라서 좀.”
“네, 더는 꼬마아이가 아니니까요.”
나츠는 대화가 영 엇박자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4년만의 재회 — — 그것도 좋지 않은 방식으로 헤어진 상대와의 재회였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에게 미치는 시간의 영향과 어른에게 미치는 시간의 영향은, 설령 절대적인 길이가 같다고 해도 전혀 다른 것이다. 나츠가 상상했던 것보다 그녀는 더 많이 변해있었다.
“루이카는 이제 스무살?”
“아뇨, 스물 한 살이에요. 만으론 열아홉이지만. 그때의 언니… 아니 선배와 같은 나이가 되었네요.”
“응. 나도 방금 그 생각했다?”
만 열아홉과 만 열하나. 만 스물일곱과 만 열아홉. 둘의 울림은 아무래도 다르다. 나츠는 소녀이던 이타하 루이카를 알고 있어도, 어른인 이타하 루이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 시간의 길이가 미치는 영향이 그렇듯이, 어른과 아이가 지내는 시간의 결과 어른끼리 지내는 시간의 결은 전혀 다른 것인 법이다.
“나츠 선배, 저, 오른쪽 다리는…”
“그대로야. 어떻게 해도 더 좋아지질 않더라.”
“그렇, 군요 … 지금은 어찌 지내시고 있나요?”
“보다시피 지금도 도쿄에서 살고 있고 … 일, 하고 있어. 프리랜서 번역. 수입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스케쥴도 스스로 짤 수 있고, 아무튼 혼자서 살 수 있게 되었어.”
“와아. 멋있어요!”
갑자기 눈을 빛내는 루이카에게, 나츠는 곤란한 듯이 “별거 아니야, 정말로”하고 대답했다. 스물 한 살이라고는 해도, 루이카 같은 ‘양갓집 규수’가 바로 취직할 일이야 없을 테고, 그대로 대학에 진학했으리라. 대학생에게 있어 사회인이란 아무튼지간에 대단해 보이는 법이다.
“루이루이는 어때?”
“루이카로 불러주시는 편이 좋겠어요.”
“아, 맞다, 미안. 더는 어린애가 아니지. 그래서, 루이카는 좀 어때?”
“저는 일본여자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오~”
“그리고, 앞으론 마녀를 위한 일을 하려고 해요.”
“응?”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의 신분이 그러하듯이, 마녀나 마법소녀를 위한 직업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해일’이 보이지 않는 일반인에게 있어 마법소녀의 존재증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보이지 않는 자는 믿지 않으리, 그런 법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마법소녀가 있다고 알리려고한들, 극히 드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단환각이나 정신병으로 취급당할 뿐이다. 당연히 마녀나 마법소녀를 위한 직업의 범위도 매우 좁다. 아, 이런, 여담이 길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자. 루이카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놀라셨나요?”
“응, 마법소녀 집회 쪽에선…”
“거기 얘긴 하지 말아주세요. 역겨워요.”
나츠는 루이카가 이토록 강렬하게 반응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츠는 말을 잇지 못한채 루이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루이카는 루이카대로, 토해내듯이 나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츠 선배는 아직 집회에 계신가요? 그딴 곳, 빨리 나와버려요.”
“아니. 별로 활동 안 해. 나, 짐만 될 뿐이고.”
그 말을 부정하려던 루이카의 시선이 나츠의 오른쪽 다리로 향했다. 나츠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하는 걸 눈치챘는지, 루이카는 입술을 닫아버렸다.
“그치만 집회 말고, 따로 어디서 일하려고?”
“시대는 변하는 법이에요”
“응?”
“음, 아직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방법은 있단 얘기랍니다.”
“잘 됐네. 아직 대학교 2학년이지? 급할 필요 없어”
“재수를 해서 1학년이에요.”
“아 —”
또 어색한 침묵이 찾아오기 전에, 나츠는 엉덩이를 털며 미끄럼틀에서 일어섰다. 루이카가 안심할 수 있도록, 가볍게 오른쪽 발목을 두드리는 시늉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절뚝거리는 것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4년간 익숙해진 다리가, 이제와서 갑자기 무거워질 리 없잖아, 어떻게든 해보란 말야, 나츠는 마음 속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루이카는 나츠를 따라 역까지 왔지만, 서로 방향이 달랐던 데다가 시간도 늦어졌기에, 그날은 연락처만을 교환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나츠가 타야했던 방향의 열차는 만원이었고, 사람이 탑승을 한다기보다는 몸을 억지로 끼워넣는다고 표현하는 편이 옳은 상태였다.
손가방을 잡고 몸을 움츠린 채 서있던 나츠의 시선이, 열차 문 앞에 달린 디스플레이로 향했다. 오늘의 뉴스 단신들이 실린 디스플레이는 ‘원인불명의 전철 고장 사고, 현재 조사중’이란 문장을 출력하고 있었다. 나츠가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을 댔다. 귀엽게 생긴 목걸이 장식으로부터 미약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마치 나츠가 그 사고 장소에 있었음을 자신은 알고 있다고 주장하듯이.
오후 다섯 시. 전철의 흔들림에 짝을 맞춰, 검은 자켓 위에 올려진 목걸이가 석양을 반짝반짝 비추었다. 사람들 눈에 확 띄는 모습이었지만, 그건 패션의 밸런스 문제라기보단 피곤에 찌든 카게우라 나츠의 혈색이 목걸이와 상반되었기 때문이었다. 번역이란 일을 하다보니 평소의 나츠는 오랜 기간 외출을 하지 않았고,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츠의 아버지는 친가에 더 오래 남아있길 바란 모양이었으나, 그녀는 더 있다가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 되버린다고 거절하고 도쿄로 향했다.
나츠는 야마노테 선에 타고 나서야 겨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1 년만에 돌아간 집에서, 어머니가 남긴 물건들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 집에서 1 분 1 초도 더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츠가 잊어버렸던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듯했다.
나츠의 어머니는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하는 법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1 년 전 오늘, 그 말을 실천하듯이 어머니는 자기 손으로 최후를 결정했다. 유서에도 ‘해방’이란 말이 몇 번이나 적혀있었다. 아버지가 연락해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병원에서 사망이 확정되었을 때, 나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부럽다고도 생각했다. 정신을 좀먹는 병으로부터 지배당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해치워 버린다, 언제나처럼 강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따사로운 석양 탓이었을까,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외로워서였을까.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열차의 흔들림이 수상할 정도로 격해지고 있었단 사실을.
많은 경우 그 징후는 물이 흐르는 소리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가 깜빡하고 잠구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졸졸졸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해,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의 소리로 변하고, 마침내는 ‘해일’이 되어 덮쳐온다. 하지만, 그것은 지상의 액체와는 달리 질량도 감촉도 없다. 적어도 일반인에게는 그렇다.
정작 사람과 달리 열차의 창문은 그 질량 없는 압력을 견디지 못했는지, 예고도 없이 한번에 터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소동에 사람들이 비명을 올리고, 나츠도 좌석에서 떨어져 몸을 움추렸다. 그 때, 그녀의 귀에 비늘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나츠는 드디어 감을 잡았다.
이 열차가 ‘발광어류의 군집이동’에 휘말렸음을.
도망갈 길 따윈 없었다. 다행히도 옆 차량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엎드린 사람들의 무리를 뚫고, 사람이 없는 칸으로 이동한 나츠는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쥐고선, 작은 목소리로 그리운 주문을 영창했다.
너의 원수가 곧 나의 원수이며
나 또한 그 원수이니
나는 스스로마저 증오할 참이다
따라서 나는 요구한다
그 힘과 목숨을!
목걸이가 뿜어내는 강렬한 벚꽃 빛깔. 가슴을 조이는 듯한 아픔. 갈증과 미열. 목덜미 정도까지밖에 뻗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단번에 늘어나 허리를 간지럽힌다. 마법소녀의 변신에 따르는 전형적인 증상들. 나에게는 몇번이고 맛보는 첫사랑 같은 느낌이었다만, 나츠에게는 이젠 지긋지긋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들을 떨쳐내듯이, 그녀는 공중에서 나타난 슬레지 햄머를 굳게 쥐고 눈 앞의 발광어류를 향해 그대로 내리찍었다. 쾅, 그리곤 콰지직. 햄머의 충격을 견뎌낸 발광어류가 머리를 밀어올리며 저항을 시도하지만, 그 턱에 바로 나츠의 왼쪽 무릎이 찍힌다. 발광어류는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쾅, 이번엔 으적.
짓눌린 동료를 발견한 발광어류들이 일제히 아가미를 벌리고 소리 없는 노성을 내지른다. 열차가 더욱더 격렬히 흔들려, 이대로라면 전복될 지경이었다. 피에 그 불꽃이 흐르지 않는 자들에겐 녀석들이 보일 리도 없고, 두려움에 떠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즉, 나츠가 여기서 멋대로 날뛰어도 좋은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알았다 알았어. 밖에 나가 놀자꾸나, 누나 잘 따라오렴?”
발광어류 따위에게 그녀의 말을 이해할 지성이 있을리 만무하나, 도발이 먹혀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녀를 덮치는 녀석들을 보고 나츠는 휙 돌아서, 기세 좋게 점프했다. 슬레지 햄머가 휙 돌아서 지면과 평행상태로 그녀의 발치에 돌아온다. 왼쪽 발은 문제 없이 햄머의 손잡이 위에 올라탔지만, 언제나 오른쪽 발이 문제였다. 미끄러진 오른발에 균형을 잃고 떨어지려는 나츠와 관계 없이 날아오르는 햄머. 나츠는 아슬아슬하게 양손으로 끝 부분을 붙자고 기어올랐다.
“걱정마… 자전거 타기야. 금방 기억 나”
자전거 타기라기보단 오토바이를 탄 모양새였지만, 어떻게든 햄머에 올라 타 자세를 낮춘 나츠가 부서진 열차의 창문 사이를 통과했다. 햄머는 열차를 빠져나가자마자 수직 상승했다.
뒤따라오는 무리의 일부는 창문 틈새에 몸이 끼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나, 나머지는 그녀를 정점으로 하는 원뿔을 그리며 하늘을 헤엄친다. 날아가는 햄머 위에서, 나츠는 숨이 점점 가빠졌다. 이제 곧 서른살. 체력이 전보다 훨씬 더 떨어져있었고, 마력의 소모도 심각했다. 한 방에 전부 때려 잡는다, 그런 단순무식한 방법이 지금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녀가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이 없는 놀이터가 보였다. 나츠는 스스로의 햄머를 끌어안듯이 강하게 쥐었다.
햄머가 공중에서 유턴하여, 그대로 드릴처럼 회전했다. 그리고 중력을 자기 편으로 하는 급강하를 시전한다. 그녀의 전매특허 ‘칠학 낙하’를 본 발광어류의 무리가 산개를 시도해보지만, 피할 수 있는 녀석은 소수뿐이었다. 햄머는 무자비하게 그들을 찍어내려 불태우고, 그대로 지면을 향해 직격했다.
놀이터의 모래가 충격파와 같이 공중으로 퍼진다.
기침을 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나츠. 그녀가 햄머를 들어올리려고 해도,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금방 자세가 무너져 버린다. 남은 발광어류들이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모래먼지 바깥에서 그녀를 포위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데, 딸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네.
그녀는 이빨을 악 물며 그렇게 생각했다.
눈 앞의 하얀 사슬이 발광어류를 끌고가기 전까지 얘기였지만.
끌려간 녀석의 배를, 사슬에 이어진 하얀 낫이 찢어버린다.
“거기 계신 분, 가만히 있으세요!”
모래의 막 사이로 비치는 실루엣이, 하얀 사슬낫으로 차례차례 발광어류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나츠가 알고 있는 한, 그런 기발한 마법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마법소녀는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다.
멍하니 그 과경을 올려다보던 나츠를 향해, 여성이 말을 걸었다.
“이제 끝났어요. 일어서실 수 있나요?”
“루이카……?”
그 질문에 상대가 눈동자를 크게 뜨고는, 짙은 눈썹을 들어올렸다. 나츠는 확인하듯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타하 루이카, 맞지?”
“어, 언니?”
어떻게든 아홉 시가 되기 전에 집에 도착한 카게우라 나츠는, 문을 잠그고 신발을 벗어던진 후 그대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대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나츠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프리랜서이기에 더더욱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을 지켜야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오후에 있었던 일은 나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츠가 침대에서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 손가방 안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에 입력된 문자열이 두 줄 정도로 늘어난 시점에서, 그녀는 엄지 손가락을 멈췄다. 입력 윈도우 안의 아이빔이 깜빡이며 그녀의 입력을 기다렸다. 그녀는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을 종료하고, 직접 전화를 거는 쪽을 택했다. 통화대기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저편에서 열정적인 응답이 쏟아져 나왔다.
“선배, 드디어 완전 복귀임까?!”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기에 나츠는 귀에서 급히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액정 화면에 표시된 이름은 ‘타카와키 코모모’. 당시의 그녀는 마법소녀 집회의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냥 우연히 휘말렸어”
“그래도 오랜만에 칠학 낙하였잖슴까, 카게우라 나츠, 화려하게 부활 이러고 막 기념 사진 찍어야 했는데”
“얘가 호들갑은. 어쨌든, 보고사항이야. 오늘 오후에 있던 그 열차사고 ‘해일’이었어. 그치만 나도 발광어류가 그렇게까지 모여든 건 처음 봤어.”
“그렇잖아도 집회에서 모두들 선배 얘기했슴다.”
“에이, 모모만 그렇겠지”
“선배는 너무 겸손해서 탈임다. 카게우라 선배 이름을 아는 후배도 잔뜩 있슴다.”
“나쁜 의미로 말이지?”
이제와서 늙은 마녀들이 그녀를 재평가할 이유따윈 없다. 4년 전의 집회에서 제명까지 언급되었던 몸이다. 그 사실은, 코모모와 루이카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저기, 있지, 모모. 음…… 나, 집회에는 보고 안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넵?”
“거기서 오늘 만났어.”
마른침을 삼킨 뒤, 나츠는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타하 루이카랑.”
휴대전화 반대편에서 수초 간 정적이 흘렀다.
“그렇습니까. 이타하 님은 건강히 지내시는지요.”
“이타하 님이라니, 마치 남처럼…”
“카게우라 선배, 저는 집회의 일원으로서 무소속 마법소녀의 활동에 대해 상층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타하 님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부탁해 모모, 이번만 눈감아줘. 응?”
휴대전화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마른 웃음소리와,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헛기침하는 소리가 몇번이고 들려왔다.
“선배, 보고를 하든 하지 않든 영구제명이란 판결이 바뀔 일은 없슴다”
“모모”
“이타하가 잘 지내면 그걸루 됐잖슴까.”
“모모”
“선배. 이타하 녀석이랑 저요, 몇 년 동안 서로 얼굴도 안 봤슴다. 지금은 같은 팀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암것도 아님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나츠도 할 말이 없다.
“미안. 무리한 부탁해서.”
“선배, 그 때 일은 선배가 잘못한 게 아니잖슴까. 제가 이렇게 집회에 있는 것도 선배 덕택이구.”
“응, 알고 있어. 미안해.”
땅이 꺼질듯한 깊은 한숨소리.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 뒤, 다시 한 번 한숨소리. 나츠는 당장에라도 그 모습이 상상이 갔다. 코모모는 지금까지 왼손으로는 휴대전화를 쥔 채, 오른손으로는 연신 그 곱슬곱슬한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있겠지. 세 번째의 한숨 뒤에, 코모모가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마법소녀 집회는 어디까지나 자유롭고 평등한 협력집단임다.”
“응.”
“무소속 마법소녀 활동 보고는 걍 지역 내 동향 확인을 위한 작업이지, 다른 단체에 소속된 마법소녀를 굳이 미행하거나 추적하진 않슴다.”
“응.”
“그니까, 이타하 님께서 어딘가 마법소녀 관련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면 저도 보고할 의무가 없슴다.”
“고마워. 정말, 진짜로 정말 정말 고마워. 모모.”
“들어가십셔”
통화를 끝낸 뒤, 앓는 소리를 내면서 나츠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로한 날에는 오른쪽 다리가 평소보다 더 말을 안 듣는다. 욕조에 따스한 물을 받아서 발을 쉬게 하면 좀 더 나아지곤 했지만, 지금 상태로 나츠가 욕조에 들어갔다간 그대로 뻗어서 잠들어 버릴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이 샤워를 선택한 나츠는, 머리를 감으면서 루이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츠의 머리도 목덜미에 걸치는 정도로 그리 길진 않았지만, 루이카처럼 바짝 짜르면 머리감을 때 편하겠다, 싶었다. 예전에 허리를 덮을 정도로 길게 길렀는데 싹뚝 잘라버리다니.
“난 아무래도 못하겠네”
나츠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깨달았다. 그게 머리카락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고.
모친이 죽었던 1 년 전과 마찬가지로, 딱히 눈물이 흐리진 않았다.
타카와키 코모모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기분전환을 하려는 듯 등과 팔을 쭉 뻗었다.
코모모와 루이카가 이젠 서로 멀어진 사이라곤 해도, ‘님’ 운운까진 할 필요는 없었다. 코모모 나름대로 제 감정을 다스리려고 붙인 말이었지만, 되려 나츠 선배의 트라우마를 자극해버렸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 코모모는 그 시절 꼬맹이로 되돌아간 기분이라 심란했다.
“저기, 지금 그 분이, 카게우라 나츠 … … 씨이죠?”
“우왓 깜짝이야”
“앗, 죄, 죄송합니다. 노, 놀래키려고 했던 게 아니고 저, 저는 그저”
카와구치 시에는 또 머리를 숙였다. 카와구치는 자기 반에서 ‘응원봉’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또 숙일 때마다, 그 포니테일의 꽁지 부분이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위 아래로 흔드는 것 같다며 붙은 별명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아도, 들고양이 꼬리를 밟았을 때도, 대중교통의 군중들 사이에서 빠져나올 때도, 무언가 선물 받았을 때도, 욕과 야유를 들었을 때도, 누군가에게 얻어 맞았을 때도, 카와구치 시에는 머리를 숙였다. 마법소녀 집회에서 어린 견습 마법소녀로서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코모모가 자신의 집에 데려오기로 한 그 날에도, 시에는 머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코모모는 시에와 함께 살면서 몇번이고 반복한 말을 다시 입에 올렸다.
“니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얼굴 들어.”
“그치만…..”
“내가 멋대로 놀란 건데 니가 왜 사과를 해. 아니 근데, 그래서 뭔 일이여?”
“저기” 하고 말하며 시에는 손가락으로 책상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아 저거” 하고 휴대전화를 들어올린 코모모가, 잠깐 동작을 멈추곤, 두 번 눈을 깜빡였다.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온도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디부터 들었어.”
“죄, 죄, 죄송합니다”
“어디부터 들었냐고 물었다”
“훔쳐들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저, 저는 그냥”
“시에.”
시에가 코모모를 올려다 보았다. 코모모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질문을 잘못한 모양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었냐”
“저, 저기, 영구제명이 어쩌구… 에서 의무가 없슴다… 까지 들었어요.”
코모모가 양손으로 몇번이고 쓸어올린 앞머리는 거의 수직으로 서있었다. 그 때, 시에가 자기 손으로 입을 막고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코모모는 그런 짓을 그만두었다. 집회로부터 보호를 부탁받은 아이를 자기가 불안하게 해서야 본말 전도다. 타카와키, 오늘로 네 번째 한숨.
“시에, 솔직히 대답해줘서 고맙다.”
“네, 네에”
“나도 네가 무슨 엿듣고 그런 짓 안할 애란 거 잘 알아”
“네 … ”
“근데, 지금부터 나랑 너, 나츠 선배는 공범이다. 그렇게 알아.”
“네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