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단발머리가 어울리지만』 Act3

Ashihara NepuYona
26 min readMar 10, 2023

박제되어버린 천재들에 대해 당신은 알고 있을까. 그렇다, 나는 27세 클럽이라 불리는 록스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들은, 시대의 변화나 육체의 쇠퇴에 따라 천재성이 변질될 일 없이, 최대한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모습으로 멈춰있다.

아직 카게우라 나츠가 무용수를 목표로 하고 있을 적에, 그녀도 그런 미래를 꿈꿔 본 적이 있다. 최고의 무대를 펼친 뒤에, 젊고 어린 채로 끝을 맞이해서, 사람들 마음 속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일. 그건 어릴 때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만한 공상에 불과했고, 다리를 다치고 나서는 영원한 반짝임은커녕 희미한 잿불조차 꺼져가려고 하고 있었다.

적어도 2018년 11월 30일까지 만 스물일곱 살의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박제된 천재란 현상은 분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분자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일순간의 연소, 그것을 무한히 재연할 수 있는 테크놀러지, 그 테크놀러지에 깃드는 이야기에 대한 열광. 그것들이 모여 화학적으로 결합한 것이 저 영원한 반짝임이다.

Act 3. 라스트 댄스는 필요없어

커다란 목소리에 카페 사람들의 시선이 다섯명의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별거 아니란 뜻으로 네다 시에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루이카는 코모모의 질문 아닌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코모모 역시 거칠게 숨을 내쉬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화가 많으신 성격인가봐? 알았어, 타카와키 씨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로 해둘게.”
“맘대로 하십쇼!”

코모모가 씩씩거리는 동안 네다 시에리가 이번에는 나츠를 향해 물었다.

“카게우라 씨는 어때? 릴리스 네트워크에서 함께 변화를 일으켜보지 않겠어?”
“선배, 갑시다. 이딴 녀석들 — ”
“마법소녀 집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단체라면서, 어디서 참견질이야? 선택은 카게우라 씨가 해야하는 거잖아?”
“…… 두 분 다, 제가 긍정적으로 답변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얼마든지. ”
“나츠 선배. 부탁해요. 저는 선배가 …… 선배가 저랑 같이 협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나츠는 일순 거절을 망설였다. 루이카는 저번과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그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리 없었다. 표현은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아마도 똑같은 것일 테다. 코모모가 그렇듯, 나츠도 루이카와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않았다. 지금 루이카는 그때와 똑같이, 외롭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츠는 루이카를 끌어안고 지켜주겠다고 했었다.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거절합니다.”

루이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각오를 다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가슴 깊이 상처받았단 사실만큼은 나츠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위로해주려고 해봐야, 루이카를 더 상처입힐 뿐이란 것도.

“어쩔 수 없지. 다만 이쪽도 피드백은 필요해서 말이지. 잠깐 시간 좀 내주겠어? 타카와키 씨는…… 이유를 들을 필욘 없겠고. 카게우라 나츠 씨는 어째서 릴리스 네트워크에 참가하고 싶지 않은 거야? 툭 터놓고 말해서, 당신 마법소녀 집회에서 이미 버림받은 패 취급 아냐?”

나츠는 네다 시에리의 말을 부정할 기분이 들진 않았다. 4년 전 사건 당시에는 제명 가능성까지 언급되었으며, 소속은 그대로 남았지만 딱히 지원을 받고 있지도 않고 지휘를 받고 있지도 않다. 최소한의 연락이나 보고만 하고 있고, 마법소녀 집회를 떠난다고 해서 코모모와 헤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 저는 이제 집회에서 기대받는 쪽도 아니고, 저 자신도 딱히 집회에 애착이 남지 않았습니다. 타카와키 코모모란 젊은 인재에게 짐이나 될뿐이겠죠.”
“절대 그렇지 않슴다!”
“모모도 실은 알고 있잖아.”
“선배!”

답답해하는 코모모를 돌아보거나 하지 않고, 나츠는 네다 시에리와 그 네다 곁에 앉아있는 루이카를 보며 끊어졌던 말을 계속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게 4 년 전 그 사건 때문은 아니에요. 그저, 제가 마법소녀로 더 이상 활동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 마력은 많이 쇠약해졌고, 경제적으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삶에 만족하려고 해요. 변화를 일으킨다던가, 시대가 변한다던가, 이젠 저와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

코모모와 루이카는 기억하고 있다. 마법소녀 집회에 대해 개선점이 많다며 열변을 토하던 그녀를. 언젠가 무용가가 되서 무대에도 서고 TV에도 나오고 유명해질 테니 미리 싸인 받아두라고 넉살을 떨던 그녀를. 너희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던 그녀를.

그런 그녀는 이 자리에는 없었다. 아니 이미 4년 전에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루이카, 기회되면 다시 연락줘.”
“음, 그건 어떠려나?”

네다가 “하세요” 하고 루이카에게 지시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루이카가 품에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꺼내었다. 코모모의 뇌리에 카페에 들어왔을 때 봤던 것을 떠올렸다. 네다로부터 루이카에게 넘겨진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시에를 향하고 있었다.

“시에, 숙여!”

자신의 왼팔로 시에의 얼굴을 감싸며 코모모가 우당탕 쓰러졌다. 카페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이쪽으로 쏠렸다. 코모모의 코를 뭔가 비릿한 냄새가 찔렀다. 루이카는 작은 향수 병을 들고 있었고, 그 작은 병에서 뿌려진 액체가 코모모의 왼쪽 어깨부터 팔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뭐야, 피? 루이루이 너 이거 뭔데?”
“왜 막아섰어? 코모모 씨는 목숨이 아깝질 않아?”
“뭔, 이건 또 뭐하는 수작질이야?”
“그리고 역겨우니까 다신 루이루이라고 부르지마세요. 부를 일도 없겠지만.”

피. 쇠비린내. 루이카. 목숨. 루이카의 피. 마법소녀의 피. 그때, 나츠의 머리에서 ‘미러볼’이란 지금까지 잊고 있던 이름이 스파크처럼 튀어올랐다. 그 기억을 맞다고 확인해주듯, 루이카가 가볍게 두 번 박수쳤다. 나츠는 갑자기 코모모의 옷을 붙잡았다.

“모모, 빨리 그거 벗어!”
“네?”
“상의, 빨리! 빨리 벗어!”
“뭔 소림니까 갑자기 어… 어어?”

얼빠진 소리가 비명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카페 사람들이 두리번 거리는 방향 반대편에서, 창문을 꿰뚫고 ‘해일’이 몰려왔다. 마법소녀의 피가, 불꽃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유성처럼 불타며 먼지 하나 남기지 못하는 것,
나는 이를 바라지 아니한다.
이름 없이 살더라도 작은 문 하나, 헛간 하나,
복숭아가 영그는 담 하나를 남기리라.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코모모와, 불타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는 나츠 앞에, 거대한 두 개의 톱니바퀴가 가로막고 섰다. 시에의 마법 액세서리가 ‘해일’ 안에서 발동한 것이다. 나츠가 코모모의 옷을 벗겨낸 걸 보고 시에가 소리쳤다.

“빨리,카게우라 씨, 빨리!”

카와구치 시에도 몇 번이고 ‘해일’을 경험했고, 마법소녀 집회를 통해서 가장 기본적인 절차를 배웠다. 시에는 지름이 자신의 발부터 어깨까지 되는 톱니바퀴를 방벽처럼 세운 채, 카게우라 나츠에게 마법소녀로서 해야할 일을 소리쳤다.

“사람들 대피시키고 119 부르세요! 여긴 제가!”

발광어류들이 곧 달려들 충격에 대비해 톱니바퀴에 팔꿈치를 붙이고 서있던 카게우라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에 의아해 하며 톱니바퀴 사이로 바깥을 보았다.

발광어류들이, 루이카의 주위에 모여, 우아하게 춤추고 있었다.

“말했잖아요. 시대가 변할 거라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루이카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 할 차례는 끝났어요. 사람들이 마녀를 두려워 할 차례에요.”

“모모, 모모! 정신차려! 모모!”

코모모는 몸이 축 늘어져 아무 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더라 …… 그래, 카페에서 루이루이한테 엄청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는데 …… 거기서부터 코모모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째선지는 몰라도 자꾸 침대가 흔들려서 그렇다. 그러니까 뇌가 두개골 안에서 흔들리는 게 분명하다. 근데 왜 흔들리는 거지.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코모모는 끙끙거리는 소리 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단 하나, 물어봐야 할 질문이 그 안개를 뚫고 의식 위로 떠올랐다.

“괜찮……슴까……시에는……”
“저, 저, 여기, 앗, 여기에 있어요”
“잘……됐네”
“모모! 모모!”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코모모는 의식을 잃었다. 나츠가 코모모를 붙잡으려고 하는 걸, 환자가 위험할 수 있다며 구급대원이 말렸다. 나츠는 오늘 아침 코모모와 같이 산 액세서리 상자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제 나오지 않았던 분만큼인지, 눈물이 끝도 없이 솟았다.

시에는 흥분에 덜덜 떨고 있는 상태였다. 나름대로 ‘해일’을 겪어왔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마법소녀 활동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마추어의 착각이고 어린아이의 오만인지 오늘 사건을 통해 시에는 깨달았다. 나츠와 힘을 합쳤어도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던 게 고작이었다.

구급센터에 도착한 구급차에서 내린 코모모는, 그대로 수술실에 실려갔다. 나츠가 보호자를 대신하여 수술동의서를 건내받았다. 수술중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단 의료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나츠는 ‘모든 사항을 숙지했으며 이에 동의합니다’란 선택지를 골랐다. 남겨진 두 사람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수술경과를 기다리는 것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이나 지나서 점심은커녕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지만 나츠도 시에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츠는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불려가, 코모모의 상태에 대해 들었다. 오른쪽 늑골에서 배쪽까지 생긴 15 cm 정도의 자상은 다행히도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고 한다. 문제는 왼쪽 손등부터 어깨까지 생긴 화상이었다. 화상의 정도가 심각해서, 절단 외의 치료법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전신화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기적적으로 어깨에서 마치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손상이 없습니다. 절단해서 치료를 받으면, 다른 부위는 문제없이 기능할 것입니다.”

나츠가 그를 향해서 “아뇨, 기적이 아니라 마법의 불꽃이 원인으로 입은 손상이라 그렇습니다. 참고로 배쪽에 생긴 상처는 마법의 사슬낫에 의해 생긴겁니다” 라고 말할 순 없었다. 나츠는 묵묵히 또 하나의 동의서에 서명했다. 치료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나츠는 병원 안의 매점에서 삼각김밥과 우유를 사왔다. 시에가 손을 대지 않았다. 나츠는 탓하지 않았다.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저기, 시에, 부모님한테는 연락했니?”
“……”
“코모모는 아직 집중치료실이래. 그러니까 오늘은 …… 곤란하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카게우라 씨는, 타카와키 선배의, 친, 친구시죠?”
“응. 믿어도 돼.”
“아,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가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 지금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코모모를 도울 수 있도록, 지금은 돌아가자.”

시에는 떨리는 두손을 맞잡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작은 목소리로 시에는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했다. 거친 호흡이 말과 말 사이를 잘라들어와, 문장을 끝마치기 힘들었다.

“주, 죽여, 죽여버릴 거야…”
“시에. 정신차려.”
“똑같, 똑같은 방법으로,죽여버릴 거야.타카와키 선배를, 타카와키…”
“안돼.”

나츠는 시에를 진정시키려고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지만, 시에는 그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 그럼, 타카와키 선배는, 왜, 제가 아니라, 왜!” 그렇게 외치는 시에를 나츠는 억눌렀다. 다시는 감각이 돌아오지 않을 오른쪽 다리가 몇 번이나 아파왔다.

나츠가 보아온 코모모의 성실함과 실력이라면 분명 공무원 시험 따윈쉽게 통과할 것이다. 그러나, 왼팔을 잃어버린 그녀가 경찰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그 성실함과 실력을 되찾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애초에 마법소녀 집회에서 내주는 지원금으론 생활하기 아슬아슬한 정도라, 치료비를 전부 내는 건 무리다. 설령 몸이 회복한다고 해도, 정신은 언제나 되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렇다면.

“안돼, 시에. 그러면 너도 루이카처럼 되버려.”
“될 게요! 되겠어요! 어차피 마법소녀도 아니라면, 차라리 마녀가!”
“그러니까, 내가 대신 복수해줄게.”

몸부림치던 시에가 무슨 말인가 싶어 나츠를 올려다보았다.

“내 마음은 말이야, 남들이 입힌 상처랑 내가 만든 상처가 잔뜩 나있어. 나 있지, 내가 미워서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나츠는 옆에 두었던 액세서리 상자를 시에에게 건냈다. 시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상자를 받은 시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나츠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시에가 모모에게 전해줘. 모모가 뭐라고 하든 곁에 있어줘, 타카와키 코모모가 카게우라 나츠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게, 옆에서 지켜봐줘.”
“영문을, 모르겠어요”
“나도 잘 몰라. 근데, 아마, 루이카도 나랑 똑같을 거야. 자기가 너무너무 미워서 참을 수가 없던 거야. 아직도 어린애라서. 그러니까 그 애에게 복수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전혀 모르겠어요!”
“아니, 알 수 있어. 혼자는 어려울지 몰라도, 시에랑 코모모 둘이서, 찾아갈 수 있을 거야.”

스물 네 살 때, 카게우라 나츠는 알고 있었다. 자기보다도 여덟 살이나 어린 이타하 루이카가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며 팔짱을 낄 때, 그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담은 행위란 걸.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4년, 루이카는 갈 수록 아름답게 성장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나츠의 심박수가 한 번도 올라간 적 없다고 한다면, 그건 도를 넘어선 거짓말이었다.

카게우라 나츠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자기가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보이는 호의를 표하더라도, 그게 자신의 감정과는 전혀 다르단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감정의 정체를 아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루이카가 항상 곁에 있어주는 게 기뻤다.
결국엔, 서로가 서로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이타하 루이카가 “코모모 씨에겐 비밀로 하고 제 방에 와주세요, 언니에게 근사한 걸 보여드릴게요” 하고 귀에 속삭였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 비밀을 만드는 건 좋지 않다고, 어른에게 그런 장난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우정 이상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기대감에 이성이 흔들렸다.

루이카가 자신의 방에서 나츠에게 보여준 ‘근사한 것’은, 카게우라 나츠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루이카, 이, 이건…..”
“후후, 걱정마세요. 착한 아이에요.”

그녀가 몰래 기르고 있던 ‘착한 아이’는, 고양이나 개가 아니었다. 작은 발광어류였다. 그녀가 자신의 반지에 입을 맞추자, 반지는 하얀 사슬 낫으로 변화했다. 낫을 손에 쥔 루이카가 스스로의 왼손을 살짝 긁어내자, 붉은 피가 중력을 거스르듯이 방울 방울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일렁이는 불꽃을 발광어류는 꿀꺽 꿀꺽 마신 뒤, 다시 공중을 천천히 헤엄쳤다.

“루이루이, 어떻게”
“무리에서 떨어져서 혼자 떨고 있었어요. 배가 고파보여서, 뭔가를 주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 피를 줬더니 이렇게 ……”

루이카가 이번엔 가볍게 박수를 두 번 치며 “미러볼, 이리온” 하고 말했다. 미러볼이란 이름을 불린 발광어류는 이타하의 목 주변을 살짝 감고는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갔다. 발광어류에게서 본래 보여야 할 공격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말도 잘 듣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해일’은 어떻게 된 거야? 발광어류는 ‘해일’ 안에서만 살지 않아?”
“무슨 소리에요, 언니. 이 방이 지금 ‘해일’ 안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변신했겠어요?”

피는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오른 게 아니었다. 물감을 바른 붓을 물 안에 넣으면 물감이 서서히 풀리듯이, 마법소녀의 불꽃이 깃든 피가 ‘해일’ 안으로 퍼져간 것이다. 루이카가 엄지로 다시 왼손을 꾹 누르자, 핏방울이 두둥실 떠올랐다. 마법소녀가 아닌 자에게는 볼 수 없는 불꽃이 맥동하는 핏방울이 천장에 가닿았다.

잉어가 사료를 받아먹듯이, 그 불꽃 방울을 미러볼은 받아먹었다.

“근사하죠?”

어른답게 혼냈어야 했다. 팀에 속한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이런 비밀을 만들어선 안된다고. 저런 위험한 생물을 갖고 불장난을 하는 게 아니라고. 혹시, 그 자리에 코모모가 함께 있었다면, 코모모의 열정적인 존경어린 시선에 나츠도 그런 어른 흉내를 냈을지도 모른다.

“……응”

대신에, 나츠는 깍지를 낀 루이카의 오른손이 참 보드랍다는 것 외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츠가 보러 갈 때마다 미러볼은 점점 커져갔다. 요구하는 피의 양도 늘었다. 루이카를 위협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미러볼의 행동은 명백하게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루이카가 길들인 미러볼은 ‘해일’에 의해 나타난 다른 발광어류들을 자발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루이카에게 임프린팅 된 것인지, 일반인들의 피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미러볼에게 발광어류란 동족이 최고의 식사였던 모양이었다. 루이카가 칭찬해주자, 기뻐하며 점점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미러볼은 더 이상 루이카와 나츠 두 사람만의 비밀이 아니었다. 미러볼이 동족을 먹이로 삼고 있으니, 루이카가 마법소녀 활동할 때가 곧 식사시간이었다. 당연히, 코모모도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코모모는 꺼려했지만 미러볼은 루이카의 주변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이후로, 루이카의 행동은 점점 더 대담해져갔다. 발광어류와 함께 다니는 마법소녀에 대한 소문이 마법소녀 커뮤니티 안에 퍼져갔다. 미러볼은 루이카의 말에 따라 몇 가지 묘기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루이카는 마법소녀 집회에 미러볼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같이 사육법을 연구하면 더는 ‘해일’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법소녀 집회가 개최하는 학회에 나가고 싶다고 나츠에게 상담했다.

상식이 있었다면 그만두게 했어야 했다.
물론, 나츠는 추천장을 써줬다.
그 학회에 찾아간 루이카는 기뻐했고, 미러볼도 그랬다.

그럴만하지 않은가.

미러볼이 먹어온 것은 발광어류 그 자체가 아니라, 발광어류 안에 축적된 마법소녀의 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타하 루이카가 준비해준 최고의 식탁 앞에서, 언제나처럼 미러볼은 사냥을 시작했다. 아이는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니까.

마법소녀 다수가 발광어류 한마리 제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공기중에 퍼진 마법소녀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일대의 발광어류 군집이었다.

미러볼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던 루이카는 그 시체 앞에서 멍하니 울고만 있었다. 그때가 되서야, 겨우, 나츠가 어른다운 일을 했다. 나츠는 자신의 오른발과 루이카의 생명을 교환했다.

그 결과, 이타하 루이카는 영구제명되어, 마법소녀 집회가 보호하는 지역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앞으로 이타하 루이카는 마법소녀 집회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다시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추천장을 써준 카게우라 나츠는 영구제명까지 가진 않았지만, 집회 내 모든 지위를 박탈 당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날은 비가 내렸다. 병실의 침대 옆에는 언제나처럼 루이카가 앉아서, 나츠의 간병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의 감각은 돌아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처럼 걷기도 힘들거란 말을 의사로부터 들은 다음부터, 나츠는 말수가 줄었고 웃는 일도 없어졌다.

“언니, 동아리 분들께서 오셨어요.”
“돌아가달라고 말씀드려. 나, 오늘은 피곤해.”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찾아와 주셨는데…”
“나, 피곤해”

나츠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루이카는 한숨을 쉬고는 댄스 동아리의 학생들에게 오늘 병문안은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중학생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대학생들은 나츠의 여동생이냐고 되물었다. 루이카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침대맡으로 돌아온 루이카가 말했다.

“언니, 그럼 재활운동해요”
“…피곤하다고 했잖아”
“하지만, 계속 그러면 외출하기 어려워진다고 의사선생님이”
“이딴 발로 어딜 간단 거야!”

어깨를 들썩이는 루이카의 모습을 보고 나츠는 자신이 얼마나 너절한 인간이지 잘 알았다. 나츠의 발이 다친 건 나츠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지, 루이카의 탓이 아니다. 그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루이카는 부모가 허락하는 한 나츠 곁에서 무엇이라도 하려 했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중학생을 상대로 자신은 폭군이라도 되는양 투정을 부렸다.

“미안, 정말로 피곤해서 그래. 오늘은 좀 쉴게”
“언니, 그럼, 내일은 재활운동 하는 거에요. 약속해요? 네?”
“응. 알았어”

알기는 뭘 안단 거야? 나츠 안의 자기혐오가 속삭인다.

“루이루이는 말야”
“네”
“친구들이랑 안 만나고, 쭉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괜찮답니다”

괜찮을 리가 없다.

“모모는 이젠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학교 친구들 있잖아. 이제 고등학교도 입학하잖아.”
“코모모 씨, 그렇게 화나지 않았어요”

아니, 화를 냈다. 병실 밖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녀석은 루이카에게 화를 냈다. 너무 위험하다고 몇번이나 경고했다고. 어째서 너만 멀쩡하고 선배가 저렇게 된 거냐고. 전부 네 탓이라고. 그야 존경하던 선배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말만 반복하고 있으면, 그런 애들 싸움이 나도 말릴 사람이 없다.

“루이루이, 나, 이제 더는 안되겠어”
“아니에요, 언니. 재활운동하면 분명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의사선생님이…”
“그런 뜻이 아냐. 루이루이 말대로 재활운동하면 분명 다시 걸을 수 있을 거야.”
“네, 그럴 거에요.”
“그치만 이렇게 루이루이한테 어리광만 부리다간, 어른이 될 수 없어.”
“어른이 될 수 없어서 무엇이 나쁜가요?”
“루이카가 상처 입게 돼. 그러니까 …… 더는 여기 오지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츠의 입술에 보드랍고 따스한 무언가가 닿았다. 그것은 무언가 무서웠는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대체 뭐가? 루이카의 코끝에서 나온 숨결이 나츠의 뺨을 간지럽혔다. 어째서 그렇게나 가까이? 자기혐오가 또다시 속삭인다. 이미 알고 있잖아? 어째서 루이카가 네 곁을 지키고 있었는지, 그 이유가 죄책감이 아니란 것쯤. 솔직히 이렇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잖아?

“언니, 저 상처 입어도 상관없어요. 언니 곁에 있게 해주세요. 언니 곁이 좋아요.”

나츠가 입은 환자복의 어깨 부위가 눈물로 축축해졌다. 그래, 확인하고 싶었다. 이 작은 소녀가 보여준 우정을 뛰어넘는 호의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를 바란 건 아니었다.

“안돼, 루이루이.”
“어째서인가요, 언니? 여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그런가요?”

그럼 더 좋지? 기뻐서 펄쩍펄쩍 뛰고 싶지?

“그런 게 아냐. 어른이랑 아이 사이라서 그래. 나, 이런 몸으론 루이루이를 지킬 수 없어.”
“그렇지 않아요. 언니는 극복할 수 있어요.”
“자기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도 지킬 수 없어. 루이루이도 알고 있잖아?”

루이카의 탓을 하려고? 미러볼이 그렇게 된 건 네가 루이카를 돌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루이카에게 힘이 없어서라고 할 생각인가 보네. 뻔뻔하기 짝이 없어.

“그럼 언니가 저를 지금까지 지켜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언니를 지켜드릴게요.”
“어떻게? 오늘부터 루이카가 내 치료비 전부 내줄 거야?”
“할 수 있어요.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루이카가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면 저~언부 해결되는구나. 치료비도 내주시고, 내 대학등록금도 내주시고, 이런 발로 취직할 수 있는 곳도 찾아주시고, 출퇴근할 때 차도 태워다주시고? 그치?”
“……”
“그럼 난 뭐야? 갓난아기야? 루이카, 말해봐”

갓난아기가 어때서? 어제까지 싫다고 내동댕이친 식사를 먹여준 건 루이카였잖아?

“말해보라니까!!!”
“언니……”

나츠는 지금까지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어른답게, 그런 비밀은 만드는 게 아니야 하고 주의를 줬어야 했다. 그런 불장난은 위험하다고 혼내줬어야 했다. 로맨틱한 기분에 빠져서, 겹쳐지는 손의 따스함을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기혐오의 목소리를 향해 나츠는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집에 가. 억지만 부리는 어린애 상대하는 거, 이제 지긋지긋해.”

그녀는 스카이트리의 꼭대기 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그 피에 맛을 들인 발광어류 십수 마리가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가 왼손을 올려 주먹을 쥐자,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근사하죠?”
“아니. 재탕이라서 시시해.”

햄머 위에 선 나츠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제 나를 습격한 발광어류들도 네 무리야?”
“아뇨. 저도 그렇게 많은 수를 기를 순 없어요.”
“그럼, 관계는 있단 거네?”
“네. 나츠 선배, 설명해드릴까요?”
“아니. 맞춰볼게. 발광어류는 ‘해일’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해일’을 몰고 다니는 게 발광어류인 거지. 그치? 발광어류를 자유롭게 부릴 수 있다면……”
“네. ‘해일’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어요.”

나츠가 발로 가볍게 차자 피를 묻힌 햄머에 불이 붙는다. 그 피냄새에 발광어류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모두가 루이카의 지시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루이카는 아직 올린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츠 선배, 저, 어른이 되었어요.”
“아니, 전혀 아니야.”
“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너 혼자만 말이지.”

나츠의 표현에 루이카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발광어류들은 더는 못 참겠단 건지 아니면 루이카의 감정에 동조한 것인지, 비늘을 떨어 마찰음을 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선배가 약해져서 틀렸단 게 아니에요. 지금 선배는 정말 멋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 걸요. 근데 코모모랑 마법소녀 집회가 방해를 하고 있는 거에요.”
“모모, 왼쪽 팔, 절단해야 한대.”
“자업자득이네요.”
“시에를 지키려고 한 게 그렇게 대단한 잘못이야?”

나츠는 커다란 슬렛지 햄머를 배턴마냥 공중에서 돌리기 시작했다. 발광어류들의 시선이 전부 햄머가 그리는 불꽃의 원에 집중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코모모 씨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너 고작 그거밖에 안되는 애였구나.”

루이카가 왼손을 내리자, 발광어류들이 나츠를 향해 전속력으로 헤엄쳤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질서하게 보였지만, 슬레지 햄머의 리치에 근접하자 바로 두 개의 편대로 나뉘어 그녀를 포위했다. 그러든 말든, 나츠는 햄머를 빙빙 돌려서 반경 3m 내의 ‘해일’에 피의 흔적을 남겼다.

“확실히, 더 똑똑해졌네. 원하는 건 ‘피’ 뿐이구나.”

햄머에 묻은 피가 만들어내는 원형의 불구름은, 마치 나츠를 보호하는 배리어같은 기능을 했다. 그 피를 빨아먹는데 정신이 없는 발광어류들은 굳이 그 원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야생의 발광어류라면 다른 녀석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취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네다가 말했던 릴리스 네트워크의 두 가지 목적, 발광어류의 공포로부터 해방과 마법소녀 집회란 요람으로부터 해방은, 사실 하나의 수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광어류의 (릴)방(리)류(스). 네다는 4 년전, 그 사육법을 프레젠테이션한 학회에 참석했었다. 그녀는 발광어류를 길들인 루이카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 재현을 준비했다. 이번엔 더 큰 스케일로, 더 스펙터클하게.

“어째서, 시에에게 피를 뿌리려 했어?”
“기생충이니까요.”
“마녀의 파이를 빼앗는?”
“네.”
“그런 일을 하면, 루이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

루이카는 이번엔 왼손을 들어올린 뒤 손을 확 펼쳐보였다. 그러자 발광어류들은 피를 마시는 걸 중단하고 토성의 끈처럼 그녀의 허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변신을 마친 루이카는 자신의 사슬낫을 꺼내들었다.

“이러면, 지킬 수 있어요.”
“지키는 게 아니라, 피를 빨아먹히는 거겠지.”

나츠의 햄머에 바른 피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전부 다 말라버리면, 발광어류들의 관심은 금방 나츠 자신에게로 바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츠에겐 불리한 승부다. 나츠는 다시 한 번 햄머를 끌어안고 그대로 고도를 상승시켰다. 루이카의 정수리 위에서부터 햄머는 드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또 칠학낙하인가요? 단순해서 알기 쉽네요.”

루이카는 손을 내려 발광어류들에게 명령했다. 발광어류들이 달려들어 그야말로 피와 살로 이뤄진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일단, 이단, 삼단….. 차례차례 갈려나갔지만 결국 루이카의 앞까진 오지 못했다. 무언가가 퍽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다량의 피가 발광어류들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루이카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기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손을 내밀어 봐야, 그 손목을 물릴 뿐이었다. 4년전의 언니라면 알고 있었을 텐데.

“단순하긴.”

루이카가 자신의 귀에 흐르는 목소리와 배에 전달된 충격에 무어라 대응하기도 전에, 햄머는 사슬낫을 휘감으며 더 위로 위로 향한다.

“나, 여기 나를 위해서라던가, 루이카를 위해서라던가, 그래서 온 게 아니야. 시에를 위해서 왔어. 시에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서 왔어.”
“윽…”
“그러니까, 병원에서 받았어. 마법소녀의 피를. 시에는 누가 뭐래도 마법소녀였어”

나츠가 공중에 터뜨린 수혈팩의 내용물은, 나츠와 시에의 피를 한 데에 뭉쳐져 있었기에 더욱더 짙은 불길을 형성했다. 다시 루이카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발광어류들은 그 불타는 구름 속을 헤엄치며 포식하는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나츠는 한손으로는 햄머를 쥐고, 한 손으로는 루이카의 왼쪽 팔목을 쥐어 명령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루이카가 왼쪽 팔목을 빼내려고 몸을 비틀 때마다 사슬낫이 요란스럽게 움직였다. 두 팽팽한 힘을 이기지 못한 검은 햄머와 하얀 사슬낫이 서로 엮인 채, 그녀들과는 다른 궤도로 튕겨져 나갔다.

두사람은 지면을 향해 — 아니 그 이전에 몸을 전부 태워버릴 불의 구름을 향해 —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루이카는 더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나츠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언니가 집에 가랬잖아요. 언니가 나보고 억지나 부리는 애라고 했잖아요. 나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될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요. 네다 씨 말대로 능력도 야망도 생겼어요.”

너에겐 단발머리가 어울리지만, 실은 아무것도 변하질 않았구나. 나도 그래. 4 년 전의 나에서 무엇 하나 바꾸질 못했어.

“나, 이제 겨우 나를 지킬 힘이 생겼는데, 근데 아직도 어른이 아니래. 나 이제 더는 못하겠어. 더는 모르겠어. 언니 나 이제 어떡해야 돼? 언니… 흑, 언니…”

우리들은 이미 브레이크가 망가진 두 바퀴일지도 몰라.

“루이루이, 내 왼손, 잡을 수 있겠어?”

하지만 말야. 운전수가 아직 핸들을 잡고 있고, 저 앞에 적당한 길이의 가드레일이 있고, 차체에 충분히 튼튼한 범퍼가 달려있으면, 정말 어쩌면, 우리는 무사하게 골인 지점까지 굴러갈 수 있을지도 몰라.

“돌아오라고 하진 않을게. 지켜준다던가 지켜달라던가 그런 말은 이젠 못하겠어. 그치만,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을진 몰라. 이대로 발이 맞지 않아서, 함께 춤출 수 없어도 괜찮아. 그러니까 내 손을 잡아줘”

나는 그 가능성에 걸어볼래.

“왜냐면 나, 루이루이를 사랑하고 있는걸.”

두터운 피구름을 뚫고, 중심축에 각각 검은 망치와 하얀 낫을 걸친, 한 쌍의 톱니바퀴가 번쩍였다.

2023년 현재, 그 발광어류 집단 폭주 사건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했을까. 네다 시에리는 마법소녀 집회의 추적에서 벗어나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릴리스 네트워크 자체는 해산되었지만, 마법소녀 집회에 불만을 지닌 이들에 의한 설립된 다른 소규모 단체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 ‘해일’이 일시적으로 줄어든 건 사실이나, 최근 다시 그 빈도가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도된 덕에 많은 마법소녀들이 마법소녀 집회에 가입할 순 있었지만, 아직 마법소녀의 사회적 발언력은 약하다. 그래도, 당신과 내가 그렇듯이, 마법소녀들은 목숨을 걸고 발광어류들과 싸우고 있다.

이 이야기는,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된 마법소녀 집회의 회의록, 당시의 보도 기록이나 자료, 관계자들의 증언을 모은 위에 — — 나 자신, 카와구치 시에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기억과 추억을 분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 자신의 감정이나 사견은 물론이고, 기억의 착오, 일방적인 착각, 의식 혹은 무의식적인 자기검열, 그리고 아주 사사로운 나의 소망이 이 글에 담겨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겠다.

나는 내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며 서술 트릭이란 특권을 휘둘러 당신을 속였다, 그렇게 자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혹시 그렇다 할지라도, 나의 의도는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쓰는 것이었다. 그 말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 있다면, ‘책’이란 말이 꽤 과장되었다는 것 정도다. 나는 지금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해 키보드로 문자를 타이핑하고 있다. 이 디지털 정보가 확고한 질량을 지닌 책이 되어 당신에게 닿을지 어떨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고, 나도 당신과 같은 한 사람의 독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의 마녀로 돌아가는 일이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이 이야기와는 관계 없는 잡담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나에게는 독자인 당신과는 관계없이, 서둘러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양손이 키보드에 묶여 있어서는 선배들이 만들어준 요리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문장을 적고 있는 와중에도, 시에야 다 식겠다, 먼저 먹어버린다, 시에씨 ,어서요,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방에 울리고 있다.

그렇기에, 나, 카와구치 시에는 이제 돌아갈 것이다. 저 소리들이 얽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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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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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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