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이드 드레드 리뷰
— 좀 더 악랄해도 좋았을 것을
탐색 액션 장르의 게임은 이것저것 해봤는데, 원조 메트로이드는 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 제작사 머큐리스팀의 작품들(캐슬배니아 LoS1, 2)을 괜찮게 플레이했기에 이번에 구입해서 플레이했다.
전반적인 평을 남기자면 ‘준비해둔 요소들을 괜찮지만 친절한 부분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나 할까. 화면 상에 마크가 표시된다던가 설명NPC가 게임플레이 도중에 끼어들어서 흐름을 해칠 정도로 도를 넘는 친절함은 아니지만, 이 게임은 모든 걸 지나치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려고 한다고 할까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랄까 그런 면이 있다.
아쉬운 부분을 말하기 앞서서 좋았던 부분.
구역별로 컨셉이 아주 뚜렷하게 다른 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폭의 환경을 준비해두고 있어서 눈이 즐거웠고, 수수께끼로 가득찬 인공행성이란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예를 들면 E.M.M.I. 구간들은 냉기가 도는 색채 조합 위에 필름 그레인을 강하게 준 것이 좋고. 프레임도 대체로 60프레임을 지키고 있으며 로딩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운드가 정말 환상적이다. 금속적이고 새된 소리를 내는데 빠른 액션과 어우러져 즉각적으로 쾌감을 전달한다. 또, 게임 플레이가 진행됨에 따라서 새로운 적들이 배치된다던가 기존의 환경이 변화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지루해지지 않도록 변화를 더하는데, 이 변화를 스토리와도 잘 연계해두어서 누군가 이 행성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고 나는 그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는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파워업을 획득하기 위한 플랫포밍 퍼즐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풀었을 때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들도 몇몇 있었고.
전투의 흐름은 카운터 어택이나 플래시 시프트 덕택에 빠르면서도 화려하게 진행되고, 보스전에서는 꽤나 고전했지만 불합리하다고 느낀 패턴은 없었다. QTE도 지나치게 복잡한 입력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카운터 어택으로만 발동하기 때문에 꽤 만족스럽다. E.M.M.I. 전들 역시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막을 수 없는 살육머신을 피해다녀야 한다는 컨셉 덕분에 좋은 흐름전환으로 활용되었고, 처음 E.M.M.I.를 쓰러뜨릴 수 있는 오메가 버스터를 얻었을 때만 해도 지나치게 스크립트형 전투로만 흘러가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의외로 이를 안전하게 연사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이 이 보스전들을 작은 퍼즐처럼 만들어준다. 특히 마지막 E.M.M.I 전은 충분히 인상적. 살짝 부정적으로 말한 이유는, 역시 지나치게 E.M.M.I가 많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파란색 녀석과 노란색 녀석은 하나로 합쳤어도 되었을 것 같고,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게임이 차근차근 반복학습을 시키다보니 공포 요소가 뒤로 갈 수록 약해진다.
‘친절함’의 범위에 들어가긴 하지만 편의성도 꽤 신경썼다. 미니맵의 크기나 기능도 적절했고, 맵의 필터링 기능이라던가 표식 기능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정말 요긴하게 써먹었다. 표식의 숫자에 제한을 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요소요소는 괜찮지만 이를 묶는 큰 틀이 아쉽다. 먼저, 맵 구성이 꽤나 직선적. “어떤 기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부품 세 개가 필요하고 이 세 개를 알아서 구하시오” 같은 분산적인 목표가 주어진 적이 없이, 진행상황에 따라 한 번에 하나 씩만 목표가 주어진다. 그러다보니 적극적으로 구역을 분산해서 탐색할 이유가 없고 굳이 이전 지역으로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아예 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임의 진행 및 스토리가 3막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2막에나 가서야 제일 처음 장소로 돌아갈 이유를 주고 새로운 파워업과 함께 탐색의 범위가 열린다. 3막에 도달하면 일곱 지역을 한 바퀴 다 돌아본 상태가 되는데, 이때가 되서야 드디어 플레이어가 세계가 제대로 열렸다는 느낌이 들고, 그러다보니 이전에 표식을 새겨둔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는 느낌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괜찮은 퍼즐이 있으니 그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경험이 파편화되니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런 구성은 E.M.M.I 전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E.M.M.I가 강력하기 때문에 먼저 센트럴 코어를 발견해서 파괴할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이 구역을 피해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지, 우선순위 선정과 그에 따른 이동경로를 계획하는 플레이어 주도적인 재미는 존재하지 않고, 대신 제작자가 원하는 순서에 따라 흐름전환 역할로만 이용되기 때문.
여기에 체크포인트 시스템도 한 몫을 하는 게, 수동 세이브 포인트가 아니라 바로 죽기 직전의 장소에서 플레이어가 부활시키기 때문에, ‘음, 지금은 자원이 부족하니 좀 더 업그레이드를 찾아볼까?’ 라던가, ‘이 구역은 너무 어려우니까 우회하도록 하자’ 같은 선택지가 게임플레이에서 사라진다.
전투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스전도 개별적으로는 괜찮지만 너무 난이도가 차근차근 올라갔다. 이 게임에서 보스 전은 E.M.M.I 뿐만 아니라 같은 종류의 보스들(조인 로봇이나 조인 전사 등)이 거듭 등장해 추가적으로 패턴이 바뀐다는 식으로, 반복학습을 통해 플레이어가 쉬이 절망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반복학습은 난이도 곡선을 완만하게 올리기야 하지만, 플레이어가 보스를 만났을 때 피가 바짝바짝 말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어렵고 따라서 이를 극복했을 때의 달성감도 작아진다. 비교적 고군분투했던 최종보스조차도, 조인 전사의 패턴으로 예행연습을 하고 나서 본 게임에 들어간다고 느꼈을 정도다.
하나 더 말하자면 자원이 모자라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듯하다. 기왕에 카운터도 있으니 카운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자원수급이 어렵다거나 하면 좋지 않았을까. 덧붙여 하드 2회차를 하고 있는데 딱히 충전 센터의 위치가 바뀐다거나 적 배치가 바뀐다거나 하는 식의 디자인적인 변화는 없는 듯하고, 단지 적들의 공격력만 달라진 듯하다. 차라리 하드에서는 강제로 수동 세이브에서만 부활하게 만들기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여튼 하드 2회차도 시도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는데, 좀 더 불친절하게 굴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본다. 19년만에 나온 ‘메트로이드’의 정식 넘버링이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겠지만 다음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면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대담하게 믿어주고, 지금보다 게임을 악랄하고 치사하게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Bad / So-So / Good / Great)
PS. 스토리 전개가 완존 메탈기어 시리즈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