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에반게리온 극장판:||(2021)

Ashihara NepuYona
6 min readAug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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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음)

모든 이야기에 결착을 짓기 위해서 설명을 밀어넣고, 주변인물도 어떻게든 처리한 뒤에, 노스탤지어도 불러일으켜야 했다. 그 결과 모든 씬이 쓸데없이 길었으며, 대사는 작중의 대화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선언문이나 정보 전달을 위해서만 기능한다. 그 골조조차 수상한 이야기를 감싸는 것은 결국 안노 히데아키란 감독의 사적인 사정 뿐이며, 허구세계를 얕보고 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를 위해서 311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은 역겹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에반게리온은 언제나 ‘팬시’한 것 아니었던가? 내용은 제쳐두고 영상미는 어떤가? 속편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어서인지 영화의 스펙터클은 “좀 더 복잡하게, 좀 더 격렬하게, 좀 더 화면 한가득”을 추구한 결과 오히려 싸구려가 되어버렸다. 제작진이 우주영상과 군함을 좋아하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관객들도 이를 즐길 수 있도록 세공을 해야하지 않았을까. 각종 3D의 사용도, 에반게리온이 활약하는 장면 외에는, 아직도 원석이란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특히나 3D로 먼저 렌더링한 뒤에 2D로 다시 덧그렸으리라 생각되는 씬은 확실히 퀄리티도 높고 주의도 끌었지만, 길지도 않고 중요한 장면도 아니라서 그냥 스리슬쩍 넘어갔기에 영 아쉬운 부분이다.

그 와중에 서비스 씬은 쓸데없이 많다. 생명의 힘이나 번식의 이미지를 강조한 1막에서야 그런 장면이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총을 쏘고 힘이 빠져서 무릎 꿇는 인물의 엉덩이를 보고 나보고 무엇을 느끼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시리즈의 자랑이었던 음악과 액션의 부드러운 연결도 없어져서 이상한 불협화음만을 내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의 영상 작품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오랜 세월동안 ‘안티’였던 시리즈가 이렇게 죽는 걸 보니, 원수가 강에서 떠내려가는 것을 기다리라는 노자의 말씀도 틀리지 않았다.

★☆☆☆(Bad / So-So / Good / Great)

(스포일러 포함)

원래부터 그랬긴 하지만, 거의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이 전부 이카리 신지의 얼터에고가 되어버렸다. EOE에서 거부하는 타자의 형상에 가까웠던 아스카는 자아비판용 의사인격이 되었고,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였던 겐도는 (다들 추측은 했겠지만) 스스로가 또 한 명의 이카리 신지였음을 입으로 줄줄 설명해준다. 그나마 마리를 집어넣음으로서 어떻게든 변화를 일으키고 싶던 모양이지만, 애초에 인물들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고 이 작품에서는 그 경향이 더 가속화된 마당에 그녀 혼자서 흐름을 바꿀 순 없었다. 그래서 마리가 신지를 이끌어내는 장면은 도무지 이야기 내적으로 해석을 허가하지 않는다. 이 앙상한 이야기는 결국 안노 히데아키 고향을 굳이 실사로 찍어 보여주면서, 안노 히데아키라는 전기를 참조 텍스트(para-text)로 쓰라고 팔꿈치로 찔러댄다. 작품해석에서 작가주의를 배격하고자 하는 나로서도 이것이 안노 히데아키란 감독의 사소설이 아니라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작중 내내 강조되는 키워드는 책임이다. 그렇다면 환상적인 힘을 이용해서 환성적인 힘을 없애는 ‘해체주의적’인 것이 정말로 책임을 지는 일일까? 나는 도무지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임팩트를 일으켜서 현실을 바꾸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설령 바꿔 쓸 수 있는 기호이더라도, 그 기호에 함의를 더 더하는 방식으로 — 그러니까 제3마을에서의 삶을 신지의 어깨에 얹는 식으로도 충분히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카리 신지란 캐릭터는 그것을 자신의 어깨에 얹으려고 할 정도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에바를 운용해 세상을 다시 쓰는 게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제3마을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야 했던 것 아닌가. 제 3마을의 사람들이 정말로 빌레와 신지들의 눈에 보이고 있던 것일까? 그것 없이 어떻게 ‘책임’을 논한다는 것일까? 설령 종말이 찾아왔을지라도, 성장한 신지라면 ‘구세주’의 자리에 내려와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고 한 명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했던 것 아닌가.

내가 이 영화에 급격하게 화가 나기 시작한 부분은 311 대지진의 기억을 인용하는 부분이었다. 311 대지진은 단순히 천재지변이 아니었을 터이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뒷처리는 사람의 영역이다. 그런데, 311 대지진과 같은 비주얼을 보여준 뒤에 그런 코멘터리는 사라지고 아버지와 아들의 가정 내 싸움이 일어난다. 그 부분은 그 부분 나름대로 웃겨서 좋다고 생각하지만(에바 둘이서 정말로 술판이 벌어진 집구석에서 싸우는 부분은 솔직하게 박수를 쳤다), 그런 식으로 사적인 이야기로만 이끌어 갈 참이라면 311 대지진을 이야기해서는 안되었다. 적어도 두 사람뿐인 이상한 집단 네르프가 아니라 빌레의 잘못으로 그려져야 했다. 게다가 311 대지진의 기억을 인용하면서도 제3마을의 사람들의 시점은 아주 짧게 지나갈 뿐이다. 신 고지라 때와 똑같이, 안노가 감독하는 영화에서 재난 속 대중은 그저 물질 덩어리일 뿐이었다.

덧붙여서, 제 3마을의 묘사 그 자체는 사실 나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아, 이것은 ‘전후’의 기억을 빌려쓴 것이구나, 그렇게 납득했다. 네르프(빌레)도 이카리 신지도 한 번 크게 패배했고, 패배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부끄럽지만 살아간다는 경험은 알기 쉽게 토우지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까지한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노스탤지어한 풍경이어도 나는 납득한다. 왜냐면 그것은 일본인의 문화에 새겨진 공통기억이니까.

작중에서 신세대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어떨까. 제 3마을에서 카지의 역할을 잘 이어받은(?) 료지야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빌레의 두 인원 — 스즈하라 사쿠라나 키타카미 미도리는 좀 재밌다고 생각했다. 어느쪽도 신지가 에바에 타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한 명은 신지가 불쌍하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반면, 한 명은 그를 순수하게 싫어하고 있다. 이번 신극장판 4부작에서 “에바에 타는 일”이 메타적으로 “지금 에바를 다시 하는 일”로 바꿔쓸 수 있다면, 그 둘은 새롭게 신극장판에 참여한 젊은 스태프 혹은 새롭게 신극장판을 보기 시작한 젊은 시청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들의 갈등은 약 총알 세 발로 어영부영 넘어간다. 이것은 분량의 문제니 어쩔 수 없겠지만, 1부의 번식의 이미지니 아이들의 미래가 어쩌니 하는 것보다, 이들을 더 제대로 다루는 것이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런 ‘미래의 아이들’이란 의미에서 나는 ‘닮은 꼴’ 씨와 ‘시키나미 타입’이 죽은 것이 싫었다. 그들은 아야나미 레이도 아니고 오리지널 시키나미도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패전’ 뒤에 태어난 아이들인 것이다. 료지가 그렇듯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물론 이건 위의 얘기처럼 정당한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나의 감정이라서 남들이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이야기를 계속하자.

그런 그들이 그냥 플롯을 위해 쓰고 버려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게다가, 그렇게 보는 입장에서 ‘닮은 꼴’에게 아야나미 레이란 이름을 부여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아야나미 레이의 교복을 입히는 것도 기분나빴다. 마치 자식에게 부모의 대역을 시키는 듯하는 것이 너무나 기분나빴다. 그게 겐도에게 있어 레이의 역할이긴 했고, 그걸 신지에게 똑같이 경험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 기분 나쁜 게 당연하지만… 꼭 그랬어야 했을까? 하여튼 이 부분은 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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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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