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자들과 투자자들

Ashihara NepuYona
3 min readMay 30, 2021

그렇다면 사네토시는 어떠한 존재였던 건가요?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올바른 말만 하는 친구, 친한 친구요. 그는 항상 사람을 깔보면서 바른 말밖에 하지 않아요. 옳다, 그르다, 승부라도 하듯이 논쟁합니다. 진지하지만 즐거워 보이기도 하죠. 그런 사람, 친구 중에 있지 않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말이죠, 저는 그가 굉장히 싫습니다(웃음).”
그래, 지금 [사랑] 이야기를 하자

심판자들은 언제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여러 문제에 대해 자신만이 알렉산더의 칼을 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만이 최후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지성의 소유자란 것이다. 또, 희안하게도, 그들은 언제나 유머센스를 결여하고 있다.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은 너무나도 진지하며, 그런 식으로 웃음으로 주장을 상대화하는 “남들”의 태도는 문제회피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반성없는 선, 여백없는 진리, 의심없는 일도양단에 언제나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다른 한 편에는 투자자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그 어떤 심판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는 환경이 존재할 뿐이며, 그것은 이미 주어진 것이라 바꿀 수 없다. 이 환경에 맞춰 스스로가 투자한만큼의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들에게 정당함이라는 것은 정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당함이란, 투자한만큼 수익이 돌아와야 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할 경우 투자대상은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환경에 멋대로 손을 대는 부당함을 자행하는 사회와 그 기반세력들이다. 혹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이익추구를 멸시하는 엘리트주의의 독주다.

왜 내가 그들을 거슬려 하는가. 그건 그들이 지지 않을 싸움만 고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배당금을 걸고나서, 지면 그것을 내놓을 승부를 하지 않는다. 한쪽은 스스로를 절대화하기 때문에, 다른 한쪽은 스스로를 무한히 상대화하기 때문에. 물론 싸움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질 가능성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싸움도 무엇도 아니다. 거기에는 대화도 승부도 없이, 올바른 말들로 가득찬, 자폐적인 독백과 토톨로지가 메아리칠 따름이다.

그러나 딱히 걱정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보통 전자는 자기 소원대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방언이나 지껄이다 이용당하고, 보통 후자는 스스로가 말한 환경이란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생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강가 하류에 앉아 아Q들의 시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Sign up to discover human stories that deepen your understanding of the world.

Free

Distraction-free reading. No ads.

Organize your knowledge with lists and highlights.

Tell your story. Find your audience.

Membership

Read member-only stories

Support writers you read most

Earn money for your writing

Listen to audio narrations

Read offline with the Medium app

Ashihara NepuYona
Ashihara NepuYona

Written by Ashihara NepuYona

10.21hz : The Megalomainc Radio Tower

No responses yet

Write a respo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