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 히데아키 감독에 대한 푸념

Ashihara NepuYona
6 min readApr 3, 2023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신 가면라이더. 왠만하면 영화는 좋은 극장에서 보자는 타입이지만 안노 히데아키 안티로서 그의 흥행수입에 +1을 해주는 일은 죽어도 싫기 때문에, 나중에 vod로나 나오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신울트라맨vod도 더럽게 재미없어서 40분 보고 껐지만.

참고로 그 신가면라이더 인트로영상.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롱샷을 초단위로 편집하고 피를 분수처럼 튀기는 것으로, 액션의 임팩트를 살리는 쪽에 중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연속성이 깨지는 부분이 많아서 편집이 로지컬하지는 않은데, 이런 부분을 과감히 트레이드 오프하고 만들어낸 액션씬이라 할 수 있겠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초근접샷의 경우는 일부러 핸드폰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해서 장안의 화제인 다큐멘터리 말인데. 봤다. 결과,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진짜(혼모노)’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깊어지게 되었다.

실사 영화를! 네 편이나 찍은(<러브 앤 팝>, <큐티 허니>, <신고지라> 감독, <신울트라맨> 제작참여) 감독이! ‘우연성’을 만들어내고 싶다느니 ‘진짜’를 보고 싶다느니 ‘순서를 맞추는 액션 합이 아니라 서로 죽고 죽이는 진흙탕 싸움’이니! 어디서 영화 처음 찍는 씨네필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어!!

인트로 영상만 봤기 때문에 무어라 평하긴 힘들지만, 솔직히 액션 씬은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건 편집의 효과가 더 큰 편이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로지컬하지 않은 면이 있어서 실제로 찍은 장면들이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었는지는 의문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편집방향을 순진히 믿는다면, 안노 히데아키의 가장 큰 문제는 지휘계통에 혼선이 온다는 점에 있다. 안노 히데아키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액션 씬 촬영에 개입한다. 이 부분에서 배경과 멀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구르기를 하면 안 된다, 저기서는… 물론 영화 촬영이 애니메이션처럼 스토리보드나 레이아웃을 탄탄하게 한 뒤에 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액션감독에게 생각을 전달하여 그에게 다시 찍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다이렉트하게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 되면 배우나 다른 스태프들은 액션감독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감독의 지시에 의해 또 무언가가 변경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주연이 급히 새롭게 추가한 액션 씬에서 감독이 OK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어차피 다시 찍을 거잖아”라고 투덜거린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다. 또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정했던 ‘원작으로 회귀’라는 컨셉에서 이탈하여 ‘우연성’이나 ‘리얼함’, 그리고 가장 자주 말하는 ‘진짜(ホンモノ, 혼모노)’를 찍고 싶다는 방향으로 이탈해버린 것도 문제다. 세상만사 예정대로 돌아가지 않는다지만, 아예 컨셉과 정반대로 이탈할 거면 프리프로덕션은 왜 한 건가?

이런 독불장군형 감독들은 의외로 많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마이클 베이나 김기덕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스태프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대신에 자기가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찍는 케이스다. 문제는 이들은 ‘언어화’를 하지 못할 뿐이지 자기가 원하는 장면이 이미 정해져 있는 반면, 안노 히데아키는 현장에서 스태프와 함께 ‘자기가 원하는’ 장면이 뭔지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크레이터로서는 나쁘지 않은 태도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 ‘우연’을 포함하는 스케쥴과 조직을 조정하는 중간관리자로서 감독의 역할은 실격이다.

조금 이야기가 새지만, TNG패트레이버 : 수도결전의 메이킹에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이와 판이한 태도를 보이는 게 흥미롭다. 오시이 마모루의 경우에 액션씬이 야간에 이뤄져서 야간촬영반을 나눈 점도 있겠지만, “난 액션씬 찍는게 뭐 그렇게 흥미롭지도 않고 야간촬영 추우니까 싫어.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잘 하게 하면 되는 거 아냐?”하고 액션 감독에게 전권을 쥐어주고 아예 촬영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구체적인 스토리보드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그 장면을 찍는다.

아무튼, 그래서 안노 히데아키가 찍고 싶어하는 ‘진짜=혼모노’ 말인데. 나는 이 말이 정말정말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어의 ‘진짜=혼모노’란 말을 혐오한다. ‘진짜=혼모노’는 문자 그대로 진짜, 리얼한 것 혹은 거짓되지 않은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녀석들에게 혼모노의 야구를 보여줘라!’ 라던가 ‘저 녀석은 혼모노다’라는 식의 활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가공을 추가하지 않은 현실,날 것 그대로이자 소재의 가능성이 시작부터 다른 천연, 또 대상의 자격을 증명하고 인증하는 본질. 이 현실-천연-본질의 연합체가 ‘혼모노’다.

물론, 내가 말하자면 그런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현실’이란 어디까지나 네트워크와 테크놀러지를 매개해서 인식되는 것이며, 그런 매개 없는 순수한 ‘진짜=혼모노’는 존재할 수 없다. 나아가 이들을 매개하지 않고/통과하지 않고/간섭받지 않고서는, 인간의 의식과 그 안의 세계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의 말을 빌리자면, “목소리-의식의 회로가 순수하게 있을 수 없는 것은 거기에 항상 이미 네트워크가 침입해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살아있는 신체에 항상 이미 미디어가 접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또한 그렇다.

그런 ‘진짜=혼모노’는 네크워크와 테크놀러지를 통과한 뒤에 생겨난 흔적에서부터, 개개인이 자기 마음 속에 재구축한 거짓된 기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가 ‘진짜=혼모노’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허구적인 것들의 가치와 인공물들의 가치를 깎아내린다는 점에 있다. 극영화의 발전은 단순히 광학 렌즈를 통해 물리적인 실체(더 정확히는 그 실체들이 만드는 빛의 반사 혹은 빛의 결여)를 찍는다는 요소 때문만에 발전한 것이 아니다. 이를 필름에 옮기고 편집을 통해 경험적인 ‘리얼한’ 세계의 시간순서를 무시하고, 우리의 의식 안에서 다른 ‘리얼리티’를 점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갖음으로써 극영화가 발전할 수 있던 것이다. 롱 테이크가 극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리얼’하기 때문이 아니라(롱테이크는 실제로 여러번 연습과 리허설을 거쳐서 만들어진 가장 정교한 허구적 기법이다), 그런 의식적 흐름과 무관한 시간의 흐름을 재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오랜 안노 히데아키 안티였지만, ‘오타쿠’를 자처하는 인간이 고작 ‘진짜=혼모노’따위에 매달리다니 더더욱 가소로울 따름이다. 마지막 결정타로, 친우가 내게 남겨줬던 말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픽션에서 진짜를 담겠다고 메소드 연기라던가 안전장치없는 스턴트같은걸 숭상하는 풍조가 문제인데, 역설적으로 기술적으로 부족하니까 진짜로 메꾸는게 아닌가… 주변에 해악만 끼치고 결과물이 딱히 낫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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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ihara NepuY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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